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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모습[이은화의 미술시간]〈260〉

입력 | 2023-03-30 03:00:00


에두아르 마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가난한 보헤미안의 삶을 택했다. 화가가 된 이후 살롱전을 통해 인정받고자 했지만, 대담한 주제와 스타일 때문에 그의 그림은 보수적인 살롱전에서 거부되거나 심사에 통과돼도 호된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1881년 그린 ‘봄’(사진)은 달랐다. 살롱전 통과는 물론 그에게 가장 큰 대중적 성공을 안겨줬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화면 속에는 양산을 들고 정원에 서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등장한다. 드레스는 화려한 꽃무늬로 뒤덮였고, 모자도 꽃으로 장식됐다. 봄기운이 물씬 나는 그림 속 모델은 파리 출신의 배우 잔 드마르시다. 화가는 그를 봄의 화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네는 유행을 선도하는 아름다운 파리 여인이 봄을 상징한다고 여겼던 듯하다. 인기 있는 옷 가게들을 직접 돌아다니며 최신 유행하는 모자와 드레스를 구해 모델에게 입혔다. 또 모델의 코와 입술을 실제보다 올려 그려 세련된 도시녀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그림 속 의상은 첨단 유행을 보여주는 반면, 그림의 형식은 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하던 측면 초상화 방식을 택했다. 그러니까 현대와 전통의 결합을 시도한 것이다.

이 그림은 당시 문화부 장관이자 오랜 친구였던 앙토냉 프루스트가 제안하고 의뢰한 것이다. 원래는 사계절을 의인화한 넉 점을 그릴 계획이었으나 마네는 두 번째로 ‘가을’을 그린 후 나머지는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논쟁적인 그림으로 파리 화단의 스캔들 메이커였던 마네는 죽음을 앞두고서야 세상과 타협을 한 걸까. 아름다운 여인, 세련된 옷, 꽃과 자연, 맑은 하늘 등 그림 속 그 어느 것도 싫어하기 힘든 소재들이다. 당연히 살롱전 심사위원뿐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봄’은 2014년 경매에서 6500만 달러에 팔리며 마네 그림 최고가를 경신했다. 거장이 그린 밝고 아름다운 그림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사랑받는다는 걸 증명한 셈이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