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에세이스트
일부러 멀어진 사람이 있다. 만나면 내내 제 얘기만 하던 사람이었다. 다소 민감한 타인들 화제도 곧잘 꺼냈는데 거의 부정적인 험담에 가까웠다. 그 앞에서 내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귀담아듣지도 않을 테지만 언제라도 내 얘길 소문낼 사람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 매사 부정적인 사람, 소문 내길 좋아하는 사람. 그저 들어주기만 했을 뿐인데도 돌아오는 길에는 몸과 마음이 두들겨 맞은 듯 힘들었다. 한편으론 불편한 대화에도 고갤 끄덕이던 내가 부끄러웠다. 왜 반박하거나 거절하지 못했을까 후회스러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이 사람을 싫어한다는 걸. 내 마음이 힘들고 싫어서 차츰 연락을 피했고 우린 서서히 멀어졌다.
아무래도 싫은 사람이 있는지.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계기는 무언갈 단숨에 자르듯 분명하지 않다. 언젠가부터 묘하게 거슬리고 불쾌함을 느끼다가 불현듯 깨닫게 된다. 나는 저 사람을 싫어하고 있구나. 어째서 싫은 걸까? 단순한 질문에 복잡한 이유들이 뒤엉킨다. 한 사람을 이토록 사소한 이유들로 싫어해도 될까, 좀 더 이해해보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관계가 힘든 건 실은 내 탓 아닐까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115세 할머니의 조언을 듣고 마음이 편해졌다. 스페인에 사는 115세 모레라 할머니는 현존 세계 최고령자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할머니는 백 년이 넘도록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비결로 “규칙적인 일상과 가족·친구와의 좋은 관계, 자연과의 교감, 정서적 안정이 중요하다. 후회하지 말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독 같은 사람을 멀리하라”라고 조언했다.
한편, 나야말로 독 같은 사람은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경청하지 않고 내 얘기만 하지 않았는지. 가벼운 언행으로 함부로 상처 주진 않았는지. 오만한 태도로 무례하게 굴진 않았는지. 잘못을 저질렀을 땐 진심으로 사과했는지. 내가 귀하다면 당신도 귀하다. 처지를 바꿔 헤아려 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야말로 모든 관계의 해독제 아닐까.
고수리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