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벗드갈 몽골 출신·서울시립대 행정학 석사
여기저기서 솟아나는 새싹들이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순하고 여린 새싹과 알록달록 만개한 봄꽃들로 눈이 즐거운 요즘이다. 올해 봄은 유독 반갑다.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워진 이후 맞는 첫 번째 봄이기에 그 아름다움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게 아닐까 싶다. 일상 회복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됐다.
올봄엔 한국살이 14년 만에 특별한 경험도 했다. 학부모로서 처음으로 부모 참여 공개수업을 참관하게 된 것이다. 필자의 자녀는 올해 4학년이 됐지만 그간 부모 참여 공개수업엔 참여하지 못했다. 코로나19 때문에 공개수업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자녀를 입학시킨 부모의 마음과 경험을 이제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수많은 경험을 했지만 이번만큼 난감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정보도 없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진땀이 났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아닌 자녀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 행사인 만큼 의상에 신경을 써야 하나 생각하던 중, 학부모들이 고가의 의상과 장신구 등을 갖춰 입고 나간다는 기사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최근 학교폭력을 다룬 한 드라마를 시청해서인지, 정체 모를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카페 사장님에게 몽골의 학부모회에 대한 이야기를 우선 건넸다. 몽골에서도 학부모가 학교를 방문하지만 학부모 참여 수업과는 성격이 다르다. 한 학기에 한 번 학기 초에 열리는 학부모회에서는 자녀가 한 학기 동안 배울 학습 내용과 필요한 준비물 등을 안내한다.
필자가 고민을 건넸더니 카페 사장님이 개인적인 의견을 들려줬다. 사장님은 대부분 학부모들은 한껏 차려입고 온다고 했다.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서 자녀의 친구들, 친구의 학부모들, 그리고 교사까지 자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놀랐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조언을 통해 대략의 분위기는 가늠할 수 있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른다는 말처럼 웬만하면 모든 것을 존중하고 따르고 싶지만 이번만큼은 고가의 옷과 장신구를 착용하기 힘들었다. 건전하지 못한 사회 분위기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울리지 않는 명품으로 자신을 속이고 싶지도 않았다. 한국 문화를 존중하지만 이번엔 마음의 소리를 따르기로 한 것이다.
필자는 고민을 하다가 정체성을 당당하게 드러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날 한국에서 다문화 인식개선 강사 또는 세계시민교육 전문 강사로 일하는 정체성을 살려 몽골 전통 의상을 입기로 결심했다.
자녀가 친구에게 들은 부정적인 말 가운데 가장 마음이 아팠던 이야기는 바로 “너네 엄마 몽골 사람이지. 너희 엄마 나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아린다. 하지만 필자는 몽골 사람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떳떳하게 생활하고 있는 이주민이다. 조만간 열릴 공개수업 때 전통 의상을 입은 필자를 아이들과 학부모, 교사는 어떻게 바라볼까. 그들에게 필자의 정체성을 드러내 필자의 자녀가 한국 사람으로서 당당히 학교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벗드갈 몽골 출신·서울시립대 행정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