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야 ‘뉴요커’가 될 수 있을까요? 가끔 여기저기서 난상토론이 벌어집니다. 8년 이상은 살아야 한다, 길거리 이상한 사람과 위험한 사람을 본능을 알게 될 때다 등등. 솔직히 뉴요커가 뭐라고 그렇게 자부심을 느낄까 싶죠. 뉴욕 특파원으로서 외부인인 제 눈에 뉴요커는 ‘서바이버’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성공을 꿈꾸고 모여든 이들이 ‘이 험난한 도시에서 내 자리를 찾고 버텨냈다’는 훈장 같은 느낌이요. 서바이버 뉴요커들의 에너지가 담긴 도시, 뉴욕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오! 하버드 졸업생인가 보죠?”
길에서 지인을 기다리는데 한 행인이 지나가며 말을 겁니다. 제가 서 있던 곳은 뉴욕 맨해튼 44번가에 있는 ‘하버드 클럽 뉴욕’ 앞이었거든요. 이곳은 하버드대 동문을 대상으로 연간 회비를 낸 멤버 위주로 운영되는 ‘프라이빗 클럽’입니다. 동문은 아니라고 격렬하게 고개를 흔들고 보니 길 건너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 동문회관격 ‘펜 클럽’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뉴욕 맨해튼 44번가는 하버드클럽을 비롯해 회원제 아이비리그 클럽이 모여 있어 ‘클럽 하우스 로우’라도 불린다. 사진은 하버드 클럽 앞 모습.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하버드 클럽 들어가 보니
이달 중순, ‘지인 찬스’로 하버드 클럽에 들어가 봤더니 정말 신세계였어요. 이날은 ‘동문의 날’ 행사로 뉴욕의 하버드 동문들이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하버드 깃발이 휘날리는 건물에 들어가 보니 회원만 이용할 수 있는 고급 식당과 가볍게 마실 수 있는 바, 이벤트 홀 등이 있었습니다. 입구부터 하버드 상징색인 적갈색 카펫, 적갈색 벽지에 온 데 ‘H’ 문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버드 클럽 내부 도서관.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클럽 안 곳곳에 걸려 있는 동문 사진 중 버락 오바마 대통령 사진도 눈에 띄었습니다. 혹자는 오바마 대통령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로 그의 하버드 인맥도 한몫했다고 평하죠. 뉴욕에 ‘작은 케임브리지’를 만들고, 서로 교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원래 뉴욕 아이비리그 클럽하우스의 원조는 프린스턴대 동문을 대상으로 운영되던 ‘프린스턴 클럽’이라고 합니다. 1866년 43번가에 설립했고 그 이후 하버드, 예일, 컬럼비아, 펜실베이니아대학과 더불어 아이비리그는 아니지만 명문 사립 윌리엄스 컬리지 클럽이 생기는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하버드 클럽 회원 전용 공간.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뉴욕 지역 매체에 따르면 이들 아이비리그 클럽은 젊은 졸업생 확보를 위해 막 졸업한 동문에게는 회원비를 공짜로 해준다거나, 졸업 후 4년까지는 회비를 400~500달러 수준으로 깎아주거나 하며 젊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운영비를 아끼기 위해 다른 아이비리그 대학 클럽에 ‘세 들어’ 살기도 한다고 하네요. 컬럼비아대는 유펜의 ‘펜 클럽’ 건물에, 다트머스대는 ‘예일 클럽’ 공간을 나눠 쓰고 있다고 합니다.
●프라이빗 클럽은 폭풍 성장
아이비리그의 전통 회원 전용 클럽은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았지만 뉴욕의 럭셔리 회원제 클럽은 폭풍 성장 중입니다. 아이러니하죠. 세계 각지의 연예인, 기업인 등 부호들이 팬데믹 기간에 사적인 공간을 찾다 보니 놀거리도 제공해주는 회원제 클럽에 뜨고 있다는 거네요. TV에서도 가끔 나오는 뉴욕 사교계의 엘리트클럽은 프레피룩을 한 엄격한 어퍼이스트사이드가 떠오르죠. 1836년에 설립된 가장 오래된 클럽이라는 ‘더 유니온 클럽’ 홈페이지에 가보니 게스트들은 반드시 재킷을 입어야 하고, 스쿼시를 칠 때는 흰색 옷을 입어야 한다고 써있네요.
하지만 요즘 뜨는 뉴욕의 회원제 클럽은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트렌디함을 내세우며 승부를 보고 있습니다. 2000년대 인기 미드 ‘섹스앤더시티’에서 여주인공 중 하나인 사만다가 ‘소호 하우스’라는 회원 전용 클럽을 이용하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다 다른 회원을 사칭했던 에피소드를 기억하시나요? 소호 하우스는 그런 트렌디 클럽의 원조 격으로 뉴욕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아니라 글로벌 30여개가 넘는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뉴욕 회원제 클럽하우스 카사 치프리아니. 홈페이지 캡처
지난해 9월 런던에서 온 ‘카사 크루즈’는 회원제라기보다 ‘투자자들의 공간’이라며 20만~50만 달러를 내야 한다고 하니 어마어마하죠. 일부 공간은 일반 고급 레스토랑으로 운영되며 회원은 약 99명이라고 합니다. 오프닝 행사에 유럽 왕족들까지 비행기를 타고 왔다니 영화 속에서나 보던 광경이네요.
영국 런던에 이어 뉴욕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진출한 회원제 클럽 카사 크루즈. 카사 크루즈 인스타그램 캡처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