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겸 작곡가로 활동하는 닥터 조.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쳐
아이유는 나이를 기록하는 가수입니다. 얄궂었던 20대 초반에 낸 ‘스물셋’, ‘이제 조금 나를 알 것’ 같았던 스물 다섯의 ‘팔레트’, 28살을 기록한 ‘에잇’…. 치열하게 달려온 20대를 정리하는 의미의 곡 ‘라일락’은 아이유에게 더욱 특별했을 것입니다. 이 곡은 발매 직후 음원차트 1위를 석권했고, 미국 빌보드가 정한 ‘2021년 최고의 K-POP 노래’ 3위, 영국 음악 평론지 NME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K-POP 노래’ 1위에 선정됐습니다.
라일락의 탑라인(멜로디)을 만든 이는 화성학 공부도 한 적 없는 의사 출신 작곡가 닥터 조(조민형·37)입니다. 그는 의대생 시절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달려가 밤을 새워 곡을 만들었습니다. 조 씨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데모곡(샘플 음원)을 본 방시혁 하이브 의장(당시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은 그에게 “신인에게서 보기 드문 신선함이 있다”며 그의 가능성을 눈 여겨 봤습니다. BTS를 키운 제작자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조 씨는 “병원 취업해서 남들처럼 평범한 인생 살아라”는 부모님 걱정을 듣던 골칫거리에서, 누적 스트리밍 1억 회를 넘은 글로벌 히트곡 라일락의 작곡가가 됐습니다.
지난달 1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의사이자 작곡가, 현재는 싱어송라이터 ‘루이드’의 프로듀서로도 활동하고 있는 조 씨를 ‘복수자들’이 만났습니다. ‘사사건건 극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그가 숱한 상처를 딛고 라일락을 꽃피우게 되기까지의 과정 (https://youtu.be/jb2PjrtmKcA)과, 아이돌 히트송 작곡 비결(https://youtu.be/ix4ZdK8N0Zs)을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의대생 시절 작곡가가 되기 위해 밤을 새우며 작곡을 했던 닥터 조.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쳐
닥터 조는 중학교 시절 작곡가를 꿈꾸는 친구를 보며 음악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음악을 ‘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모범생이었던 그는 의료봉사를 다니는 의사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에 진학합니다. 하지만 유년시절의 꿈이 그의 내면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학업은 뒷전이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청력소실이 올 정도로 작곡에만 몰두했습니다. 의사와 작곡가를 고민하던 중, 방시혁 당시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의 한 마디가 그를 흔들었습니다. “간절히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선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고려대 의대에 진학한 모범생이셨어요. 음악을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의사와 작곡가를 고민하다가 방시혁 하이브 의장 때문에 의사를 그만 두셨다고요?
당시 방시혁 의장님이 JYP를 나와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차렸을 때였어요. 방 의장님이 작곡가 지망생들을 위한 온라인 카페 ‘퓨처 프로듀서’를 만드셨어요. 학창시절 우상에게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은 기회잖아요. 카페에 10개 씩 데모곡을 올렸는데 방 의장님이 그걸 보시고 ‘신인답지 않은 가능성이 보인다’는 댓글을 달아 주셨어요. 그게 인연이 돼서 실제로 뵀는데, 의사와 작곡가를 고민하는 저에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긴 힘들다. 두 가지 중 더 간절히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 때 결단이 섰어요.
―의사가 아닌 작곡가의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대는 없었나요?
부모님은 음악으로 돈을 번다는 생각을 못 하셨어요. 저에게 “왜 그렇게 음악에 목을 매냐. 빨리 의사로 취직해서 돈 벌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라”라고 말씀하셨죠. 그런데 제가 남의 말을 듣긴 하지만 참고만 하고, 결국 제가 하고 싶은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에요. (웃음)
제가 중학생 때부터 JYP 음악을 정말 좋아했어요. 지오디, 박지윤, 별, 비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죠. 군의관 시절 퇴근 후 밤새 작곡한 데모곡을 무작정 JYP 이메일로 보내기도 하고, 신인개발팀 내선번호로 전화도 걸었어요. 어느 날 “2AM이라는 그룹이 곧 데뷔하는데 이 곡으로 연습을 시켜 보겠다”고 답이 왔죠. 제 곡이 앨범에 실리진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박진영 PD님도 알게 됐고, JYP와 퍼블리싱 계약도 맺게 됐어요.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쳐
JYP와 계약을 맺은 뒤 그의 커리어는 탄탄대로였습니다. 2AM, 갓세븐, 미스에이의 멤버 페이, 트와이스 등 JYP를 대표하는 인기 아이돌 그룹과 작업하며 작곡가로서 자리를 잡아가던 무렵이었습니다. 인기 걸그룹의 타이틀곡 작사와 작곡, 동경하던 JYP 소속 가수의 타이틀곡 프로듀싱까지. 작곡가라면 누구나 꿈꿨을 기회가 한 순간에 위기로 돌변한 순간들이 잇따랐습니다. 조 씨는 그 때 “끝까지 (잘 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나태함이 아닙니다. 과정에는 최선을 다하되, 자신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결과에는 집착하지 않는 초연함을 기른 것입니다.
―방시혁, 박진영 등 당대 최고 프로듀서에게 인정받으면서 탄탄대로를 걸으셨어요. 작곡가로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에요?
걸그룹 구구단의 타이틀곡 ‘나 같은 애’의 작사, 작곡을 맡았을 때였어요. 그 때 “왜 저런 듣보(듣지도 보지도 못한) 작곡가를 붙여서 가수 앞길을 막느냐”부터 시작해서 “부모님을 해코지하겠다”는 내용까지 음원 사이트 댓글창을 도배했어요. 너무 충격을 받아서 악플러들을 고소할까 고민도 했는데, 선배 작곡가분들이 “고소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더 피폐해 질 거다”라며 말리셨어요. 걸그룹 타이틀곡을 맡았다는 게 작곡가로서는 중요한 발돋움이기 때문에 그 시간을 부정적으로 낭비하지 말고, 좋은 기회로 여기자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원더걸스 출신 유빈의 첫 솔로앨범 ‘도시여자’의 자켓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원더걸스 출신 유빈의 첫 솔로앨범 타이틀곡 ‘숙녀’의 작사, 작곡, 편곡까지 맡으셨는데 그 때도 심리적으로 힘드셨다고요.
중학교 때부터 JYP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작곡가로서의 첫 목표가 JYP에서 타이틀곡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유빈의 ‘숙녀’는 그 목표를 이룬 곡이에요. 제가 작사, 작곡, 편곡까지 맡았거든요.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행복했어요. 그런데 예상치 못한 ‘왜색논란’이 일각에서 제기됐어요. 숙녀는 시티팝 장르의 곡이라 시티팝이 태동한 일본의 1970~1980년대 버블 시대의 분위기가 묻어 있어요. 다만 일본의 당시 분위기를 재연한 것이지, 찬양한 것은 아니거든요. 왜색논란으로 노력들이 묻히는 것 같아 씁쓸했죠.
―작곡가님의 대표곡 ‘라일락’은 어떻게 만들게 되셨나요?
2019년 말에 전세사기를 당했어요. 신축빌라에 2년 전세로 들어갔는데 계약 직후 집주인이 바뀌어있고, 저와 계약한 집주인의 연락도 두절된 거에요. 결국 보증금을 돌려받긴 했지만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고, 수입 없이 대출금 이자를 갚으면서 경제적으로도 힘들어졌어요. 돈을 벌기 위해 한방병원을 나가야 했죠. 물 마실 시간도 없이 하루에 환자를 100명 넘게 진료했어요. 그 시기에 ‘라일락’을 작곡했어요.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생각하고 모든 걸 쏟아 부었어요. 병원 퇴근 시간에 맞춰서 저녁식사를 주문해놓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빨리 밥을 먹은 뒤에 새벽 4시까지 곡을 만들었어요. 오전 9시가 되면 병원으로 출근하고요. 그렇게 만든 곡이 타이틀곡이 되고, 음원차트 1위에 오른 과정이 전부 비현실적이었어요.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며 하루에 환자를 100명 넘게 보던 시기에 아이유의 ‘라일락’을 작곡한 닥터 조.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쳐
―‘나 같은 애’의 악플, ‘숙녀’의 왜색논란, 전세사기까지…. 삶의 고비들이 많았는데 그 순간을 이겨내고 ‘라일락’을 만드신 거네요. 멘탈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저는 멘탈이 강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서 끝까지 믿지 않아요. ‘이 곡은 대박이 날 거야’라고 기대하면 잘 안 되더라고요. 반대로 ‘나는 안 된다’ ‘이게 성공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거꾸로 생각하니 결과가 잘 안 나와도 실망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대신 과정에는 후회가 남지 않게 최선을 다해요. 결과에는 초연한 마음을 가지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많이 걸어요.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쳐
―기대 안하려 해도 기대하게 되고, 결과가 안 좋으면 낙담하게 되잖아요. 결과에 초연한 마음은 어떻게 갖게 되신 건가요?
제 삶이 사사건건 극적이었어요. 의대 시절 혈압이 200 가까이 올라서 죽을 뻔한 적도 있고, 전세사기도 당했고요. 작곡가가 되고 나서도 힘들게 발매한 타이틀곡이 욕을 먹거나, 최선을 다한 곡이 미발매되는 과정을 지나면서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쳐도 안 풀릴 때는 안 풀리는구나’를 배웠어요. 단단해졌다고 생각하는데도 흔들리는 순간, 당연히 오죠. 타고난 성향이 계획적이고 생각이 많아서 불안한 순간이 오면 잠도 못자고 ‘생각의 버튼’을 끌 수가 없어요. 그런 나 자신을 탓하지 않아야 해요. 끝없이 생각하고 걱정하는 나 자신을 탓하는 순간 더 힘들어져요. 내 편은 결국 나밖에 없어더라고요.
―작곡가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끝이 없는 노력은 없습니다. 언젠가 끝이 있으니 기회가 되고 에너지가 있을 때 후회가 없을 정도로 노력하세요. 언제까지나 힘들지는 않을 거에요.
복수자들
영화 ‘올드보이’ 속 오대수가 15년 간 군만두만 먹으며 칼을 갈았던 복수? 아닙니다. ‘킬빌’의 블랙맘바가 자신을 죽이려 한 보스를 처단하는 복수? 그것도 아닙니다. ‘복수자들’은 복수(複數)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한 가지 일만 하고 살기엔 지루하다고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겠다고요? 본캐와 부캐, 양쪽을 오가는 복수자들이 직접 도전과 병행의 노하우를 전해드립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