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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의 피에로, 왜 한 번만 전시됐을까?[영감 한 스푼]

입력 | 2023-04-01 11:00:00

호퍼의 ‘푸른 저녁’과 랄프 왈도 에머슨




에드워드 호퍼의 ‘푸른 저녁’ 중 일부.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여러분 안녕하세요,

미술을 사랑하는 구독자 여러분 중 4월 있을 에드워드 호퍼 전시를 기다리는 분이 많을 듯합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작품 사진 몇 장을 미리 공개해 그중 한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이 작품은 1914년, 미국 작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가 32살일 때 프랑스에서 그린 것입니다.

한글 제목은 ‘푸른 저녁’인데, 원제목은 ‘Soir Bleu’,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입니다.

어두운 옷차림을 한 남성들 가운데 분칠을 한 피에로와 여성이 눈길을 사로잡죠. 이 그림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



주목받지 못한 그림

에드워드 호퍼, 푸른 저녁, 1914년.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이 그림은 제목만 독특한 것이 아닙니다. 사이즈도 높이 91.8cm에 폭 182.7cm로 젊은 작가인 호퍼가 이 시기 그렸던 것 중 가장 큰 축에 속합니다.

그가 기량을 보여주기 위해 야심 차게 준비한 그림임을 알 수 있죠.

이 무렵 호퍼는 당시 예술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앞서가는 미술을 배우기 위해 여러 차례 여행을 다녀온 뒤였습니다.

여행에서 호퍼는 프랑스의 사순절 축제인 ‘미카렘’에서 피에로와 얼굴을 하얗게 칠한 여자들을 봤다고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씁니다. 즉 이 그림은 그때 본 풍경을 담은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 뉴욕 코너, 1913년. 사진: 미국 내셔널갤러리

그런데 호퍼는 이 그림을 1915년 그룹전에 출품한 뒤 평생 다시는 내놓지 않았습니다. 이 때 함께 전시한 소품 ‘뉴욕 코너’가 오히려 미국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았고, 야심작인 ‘푸른 저녁’은 별 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죠.

19세기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렉의 영향이 짙게 보이는 ‘푸른 저녁’은 프랑스 후기 인상파의 아류로 보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호퍼는 이 그림에서 한 가지 특징은 남겨둡니다.

이 그림에는 호퍼 그림답지 않게 무려 7명의 사람이 등장하죠. 그런데 누구도 서로 눈을 맞추거나 대화를 나누지 않습니다. 바로 도시 속 사람들이 스스로의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입니다.




익숙한 일상을 그리다
‘푸른 저녁’을 그릴 무렵 호퍼는 수년 동안 그림을 팔지 못해 일러스트와 포스터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특히 뉴욕의 거리 풍경을 묘사한 판화나 영화 포스터, 광고물을 그렸습니다. 그러다 1918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포스터를 그려 상을 받기도 합니다.

에드워드 호퍼, 이층에 내리는 햇빛, 1960.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호퍼가 프랑스어 제목을 붙인 ‘푸른 저녁’이 유럽에 대한 선망이나 동경을 담았다면, 그 후부터 호퍼의 작품은 지극히 미국적인 일상에 더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유명한 호퍼의 그림인 ‘밤의 사람들’(Nighthakws)은 물론,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 같은 작품도 미국인들이 사는 평범한 집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호퍼는 이렇게 미국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1931년에는 휘트니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그의 작품을 수천 달러를 주고 구매하기 시작했고, 1933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회고전을 여는 등 성공 가도에 오르게 됩니다.

40대부터 주목을 받고 그 후로도 미국 미술관의 사랑을 받았으니, 호퍼는 비교적 행복한 삶을 산 예술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지극히 미국적인 고독

에드워드 호퍼, 오전 7시, 1948.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사실 호퍼가 활발하게 작업을 했던 1930년대 유럽 예술가들은 다다이즘에서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한 초현실주의 예술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현실의 풍경을 빛의 효과로 집중해 그리는 것은 이미 19세기 말 인상파 작가들이 너무나도 잘 보여준 것이었죠. 이 무렵 회화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친 뒤 추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호퍼는 프랑스를 방문한 소감에 대해 “피카소에 대해서는 잘 들어보지 못했고, 램브란트가 좋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호퍼가 파리에 머물 때 이미 피카소는 입체파 예술로 세계 미술계를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호퍼는 이러한 흐름의 중요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파블로 피카소의 1913-14년 작품 ‘머리’. 사진출처: 스코틀랜드 현대미술관.

한편 호퍼는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로 랄프 왈도 에머슨(1803~1882)을 꼽곤 했습니다.

에머슨은 모든 개인이 내면의 소리에 충실해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저서 ‘자기신뢰’로 미국의 사상적 뿌리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유럽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꿈꾸었던 미국의 상황과 맞아떨어졌죠.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런 것들을 느끼는 내면을 소중히 여기는 에머슨의 사상은 호퍼의 그림과 굉장히 닮아 있습니다. 호퍼 역시 주변 도시의 풍경 속에서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 사람들을 그렸기 때문이죠.

에드워드 호퍼, 자화상, 1925-1930년.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이런 점에서 보면 호퍼는 미국 미술사의 중요한 작가임이 확실해 보입니다. 20세기 초반 미국인들이 원했던 바를 그림이 충실하게 담고 있으니까요. 미국인들에게 중요한 가치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국의 박수근’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의 ‘푸른 저녁’이 다시 빛을 보지 못했던 이유. 미국이 제1·2차 세계대전 등 두 번의 전쟁을 거치며 조금씩 유럽에 대한 동경을 거둬들이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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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의견
(지난주 원계홍 회고전에 관한 의견입니다)◇ 이미 잘 알려진 유명한 작가였다면 선입견이 작용했을 수도 있겠지만, 세상과 고립되었던 작가의 작품들인데도 순수하게 작품 그 자체에 끌리고 감동한 분들이 있다는 게 놀랍고도 고무적입니다. 그분들이 작품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신 것도 특별한 인연인 것 같습니다. 온갖 사건, 사고들이 벌어지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따뜻하고, 예술이 서로 모르는 분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소통하게 했네요. 말을 걸어오는 그림들입니다.

◇ 정말 디지털 시대 이전, 기업들의 달력…. 우리 생활에 얼마나 문화 수준을 올려준 매개체였는지 몰라요. 크라운제과에서 원계홍 작가의 작품이 실렸었다니, 그 시대 기획자의 남다른 안목과 결단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 어릴 때만 해도 한독약품 명화 달력처럼 소중한 갤러리도 없었거니와 삼성 달력만큼 한국의 미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제작하는 곳도 없었는데, 요즘은 통 접하기가 어렵네요! 요즘 집에 달력 건 집 거의 없잖아요? ㅎㅎ

◇ 무명 화가의 그림을 통해 두 사람이 엮이게 되고 그 이야기가 저에게까지 닿은 것이 영화 줄거리 같아 흥미롭습니다. 그림이 조용하고 어딘가 쓸쓸해서 좋네요.

◇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살아생전에 그렇게 인정받고 위로받았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많은 예술가들의 때는 그렇게 일찍 찾아오지 않더라구요. 그나마 두 분 덕에 뒤늦게라도 빛을 보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솔)

◇ 이 전시를 다녀오고 나서 한참 마음이 애잔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정직하고 올바른 예술의 길을 걸어온 분이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기하학적인 구도 뛰어난 색감, 거기에 역사성까지 가미되어 있는 작품이 너무 훌륭한 작품입니다. 훌륭한 컬렉터님들을 만나 이제야 제대로 된 조명을 받을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