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도가 은거한 연꽃 모양의 섬… 시조 ‘오우가’ ‘어부사시사’의 배경 조선 3대 정원으로 꼽히는 ‘세연정’… 암벽 끝엔 우암 송시열의 흔적이 둥근 자갈 굴러다니는 ‘공룡알해변’… 선홍색 동백꽃이 맞이하는 ‘뾰족산’
고산 윤선도가 ‘어부사시사’를 짓고 자연과 음악을 즐겼던 전남 완도군 보길도 세연정. 봄 가뭄에 연못에 있는 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냈지만, 동백꽃은 더욱 붉게 피어나고 있다.
《1층엔 동백꽃, 2층엔 벚꽃 터널. 지난 주말(3월 26일) 전남 완도군 보길도의 도로변에는 나무들이 본격적인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제주 동백꽃은 늦가을부터 피어나기 시작해 한겨울에 절정기를 맞지만, 보길도 선운사 등 남도의 동백꽃은 늦겨울과 초봄에 피어 4월 중순까지 오랫동안 지속된다. 붉은 잎과 노란색 꽃밥 수술을 가진 동백꽃은 한복을 입은 여인처럼 단아한 모습이다. 동백꽃은 땅밑에도 통째로 떨어져 있어 보길도의 길가엔 온통 붉은 융단이 깔렸다. 길을 가는 아주머니는 차마 꽃을 밟지 못하고 조심조심 걸어간다.》
●자연의 무대 연출가 윤선도
전남 완도에서 남서쪽으로 18.3km 떨어진 보길도(甫吉島)는 땅끝 해남에서 30분 정도 배를 타고 노화도 선착장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1587∼1671)가 홀딱 반해 자신만의 이상향으로 꾸미고 늙어 죽을 때까지 은거했던 섬이다. 고산은 병자호란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강화도로 향하던 중 인조가 이미 남한산성에서 적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에 고산은 세상을 버리고 제주도에 은거하려고 배를 타고 가다가 보길도를 발견하고 터를 잡게 된다. 고산은 섬의 산세가 피어나는 연꽃을 닮았다 하여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을 짓고, 낙서재와 세연정, 동천석실 등의 건물을 지었다. 이후 두 차례 귀양과 벼슬을 하면서 85세까지 이 섬에서 은둔하며 살았다.
윤선도가 살던 낙서재 바위 틈에 떨어진 동백꽃.
고산은 부용동의 본래 있던 자연에 최소한의 인위적인 개입으로 자연을 품은 장대한 원림을 만들어냈다. 그가 꿈꾼 이상향의 건축적 주제는 바로 시조 ‘오우가(五友歌)’에 나오는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이라는 다섯 벗이다.
먼저 조선의 3대 정원으로 꼽히는 ‘세연정’은 바로 물의 정원이다. 세연(洗然)은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해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뜻. 담양 소쇄원에 있는 ‘제월당’ ‘광풍각’이 ‘비가 그친 후 맑게 갠 하늘에 뜬 달과 청량한 바람’을 뜻하는 것처럼 마음을 맑게 수양하고자 하는 성리학적 세계관을 담은 정원이다.
고산 윤선도는 요즘으로 치면 최고의 ‘오페라 연출가’이기도 했다. “하루도 음악이 없으면 성정을 수양하며 세간의 걱정을 잊을 수 없다”고 한 고산은 연못과 정자, 축대와 절벽을 입체적으로 활용한 자연의 대극장을 만들어냈다. 정자 위에서 관현악 연주에 맞춰 ‘어부사시사’를 부르면 물길 너머 돌로 쌓은 무대인 동대와 서대에서 무희들이 군무를 추었다고 한다. 또한 서쪽 산 중턱에 있는 바위인 옥소대 위에서도 군무를 추었는데, 세연지 연못 위로 춤사위가 비쳤다고 한다.
정자는 자연의 종합예술을 감상하는 최고의 객석이다. 정자는 1칸의 온돌방과 대청마루로 이뤄져 있는데, 사면을 둘러싼 ‘들어열개문’을 모두 올리면 기둥 사이로 액자 속의 명화 같은 장엄한 풍경이 펼쳐진다. 조선의 정원건축 원리인 ‘차경(借景)’이다. 정자는 작지만 사방으로 물소리와 바람 소리, 음악과 새소리, 달빛이 흐르며 무한히 넓어지는 공간이다.
고산이 낙서재에서 마주 보이는 앞산 바위 절벽에 지은 동천석실의 주제는 ‘돌’이다.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는 한 칸 정자 주변엔 석문, 석담, 석천, 석폭, 석전 등 자연석으로 만든 연못과 돌다리 등이 있다. 석실 앞에는 도르래를 걸어 음식을 올려서 먹었다는 용두암과 차를 끓여 마신 차바위가 남아 있다. 낙서재 앞마당에도 고산이 달을 감상할 때 앉았던 거북 모양의 평평한 바위인 ‘귀암(龜巖)’이 있고, 건너편 ‘곡수당(曲水堂)’에는 개울의 물을 끌어들여 인공폭포까지 만들어 놓았다.
세연정 동백나무 숲속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동백꽃.
우암 송시열이 죽기 전 남긴 글씨가 새겨진 바위.
윤선도가 세상을 떠난 지 18년 후인 1689년. 우암이 제주도로 유배 가던 중 풍랑으로 보길도에 기착한다. 우암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하듯 왕을 그리워하며 신세를 한탄하는 시를 보길도 끝 암벽에 새겨놓았다. 남인과 서인의 영수로 대결하던 두 거물이 보길도에서 남긴 흔적을 보면서 권력과 풍류, 인생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공룡알해변과 뾰족산
둥글고 큰 몽돌이 가득한 공룡알해변.
보길도 보옥리에 있는 뾰족산(보죽산).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바다 전망이 펼쳐진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오전 7시에 뾰족산 산행을 시작했다. 동네에서 키우는 흰둥이 개가 등산로 입구로 달려오더니 앞장서 길을 인도한다. 뾰족산은 온통 동백나무가 원시림처럼 우거진 숲이다. 흰둥이가 인도하는 등산로에는 선홍색 동백꽃이 점점이 떨어져 있다. 마치 누군가 ‘꽃길만 걷게 해줄게’ 하면서 나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것 같다. 아침의 동백나무 숲속에서는 수많은 작은 새들이 지저귀며 울어댄다.
글·사진 보길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