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대구 수성구 들안로 옛 범어3동 행정복지센터 자리에 들어선 정호승문학관 개관식이 열렸다. 이날 문학관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자신의 육필원고, 소장품 등을 소개한 정호승 시인. 대구 수성구 제공
60년 전 논밭이던 대구 도심을 가로질러 흐른 범어천은 겨울이면 물이 말라 자갈밭이 됐다. 등하굣길 자갈을 밟으며 사색했던 정호승 시인(73)은 이때부터 시를 썼다고 한다. ‘나는 왜 세상에 오게 됐나’, ‘나는 왜 공부를 못할까’, ‘우리 집은 어째서 이토록 가난할까’ 사춘기 소년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시와 만났다. 지난달 31일 대구에서 만난 정 시인은 “범어천은 나의 시적 사유의 근원이 되는 ‘모태(母胎)’와 같다”고 했다.
정호승 시인이 지난달 31일 대구 수성구 들안로에 문을 연 정호승 문학관 개관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구 수성구 제공
정호승 시인이 지난달 31일 열린 정호승문학관 개관식을 마친 뒤 2층 전시관에 진열된 사진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대구 수성구 제공
정 시인은 “삶의 본질은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판화가 남궁산 씨가 2005년 제작한 정 시인의 장서표(藏書票·책에 붙이는 표)에는 낙타 문양이 있다. 문학관에도 낙타 그림이나 공예품들이 전시됐다. 정 시인은 “광막한 사막 속 낙타를 보면 인생이라는 광야에서 마주하는 고통을 승화시키기 위해 시를 쓰는 나를 보는듯하다”면서 “시는 영혼의 양식”이라고 했다. 모든 전시 작품에 대한 설명은 정 시인이 직접 쓰고, 다듬었다.
정호승문학관 2층에 전시돼 있는 정호승 시인의 육필원고들과 주요작들. 대구 수성구 제공
지난달 31일 대구 수성구 들안로에 문을 연 정호승문학관 2층 전시관에 관람객들이 범어천 풍경을 내려다보며 정호승 시인의 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의자가 놓여 있다.
“신작 시집이 나오고 6개월이 지난 요즘 ‘내가 다시 시를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삽니다. 그러나 배고프면 밥을 먹듯, 시인은 시를 써야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죠. 인생은 고통과 함께 사는 것이지만 우리는 시를 통해 위안을 받고,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문학관에 오시는 분들이 그렇게 쉬다 가시길 바랍니다.”(정 시인)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