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그 뜻이 아닌데” 통역 사고로 쥐구멍을 찾고 싶은 대통령 미국 외교의 난처한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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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초청한 백악관 국빈 만찬 모습. 백악관 홈페이지
So, with your help, the United States will again lead not just by the example of our power but the power of our example.”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미국은 다시 세계를 주도할 것이다. 우리 힘의 본보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 본보기의 힘을 통해서)
최근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안보실장이 교체되는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백악관이 마련한 만찬 행사 건에 대한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정가에서 알아주는 외교통입니다.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10년 넘게 활동했고 위원장을 두 차례나 지낸 그는 외교 행사의 중요성을 아는 정치인입니다.(여러분들의 도움으로 미국은 다시 세계를 주도할 것이다. 우리 힘의 본보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 본보기의 힘을 통해서)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 외교를 철회하고 다자 협력주의를 강조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우리 힘의 본보기(the example of our power)가 아니라 우리 본보기의 힘(the power of our example)을 통해 세계를 리드해야 한다”라는 명구절이 나옵니다.
정상회담에서 만찬으로 이어지는 국빈 초청 행사는 동맹국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베푸는 최고의 예우입니다. 사소한 파티도 RSVP(참석 여부 회신)를 챙기는 것이 미국 문화인데 상대국에서 국빈 만찬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을 대접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외교 행사는 철저한 각본에 따라 움직이지만, 종종 대형 실수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미국 외교의 난처한 순간들을 알아봤습니다.
▶참조기사: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1222/117122734/1
1977년 폴란드에 도착한 지미 카터 대통령(가운데)이 에드워드 기에레크 공산당 제1서기의 영접을 받는 모습. 이 방문에서 카터 대통령의 연설이 잘못 통역되는 사고가 있었다. 더 카터 센터 홈페이지
I desire the Poles carnally.”
(나는 폴란드인들을 육체적으로 갈망한다)
외교 행사에서는 통·번역 실수가 종종 벌어집니다. 1978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폴란드를 국빈 방문했을 때 대형 오역 사건이 터졌습니다. 카터 대통령의 방문 소감을 통역 담당자가 폴란드어로 잘못 전달한 것입니다. “I hope to learn about the Polish people’s desires for the future”(나는 폴란드인들의 미래에 대한 바람을 알고 싶다)라는 카터 대통령의 발언은 “나는 육체적으로 폴란드 사람들을 갈망한다”라는 의미의 폴란드어로 통역됐습니다. “when I left the United States”(내가 미국에서 출발했을 때)라는 구절은 “when I abandoned the United States”(내가 미국을 버렸을 때)라는 의미의 폴란드어로 통역됐습니다. 이밖에도 두세 군데에서 더 실수가 발견됐습니다.(나는 폴란드인들을 육체적으로 갈망한다)
시모어 통역사는 즉시 해고됐습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통역 내용이 이상하다는 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I thought I had done a hell of a job.”(나는 내가 통역을 멋지게 해낸 줄 알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어깨에 손을 얹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깜짝 놀라는 모습. 위키피디아
Bush rubs Merkel up the wrong way.”
(부시가 메르켈을 화나게 만들다)
“부시가 가는 곳마다 사건이 따른다.” 미국 외교가의 속설입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성급한 성격 때문에 자주 실수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2007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주요8개국(G8)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메르켈 총리에게 마사지해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부시가 메르켈을 화나게 만들다)
부시 대통령은 다른 정상들이 둘러앉은 테이블에 늦게 입장하면서 갑자기 메르켈 총리의 어깨에 손을 얹고 주무르는 시늉을 했습니다. 놀란 메르켈 총리는 반사적으로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빨리 치우라는 의미였습니다. 당시 모습이 담긴 5초 정도의 짧은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상대의 동의 없이 신체를 접촉했다는 점에서 성희롱 논란도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을 보도한 미국 언론의 기사 제목입니다. 미국인들은 ‘massage’(마사지) 대신에 ‘rub’(럽)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문지르다’라는 뜻입니다. ‘rub up the wrong way’는 ‘잘못된 방향으로 마사지를 해주다,’ 즉 ‘의도치 않게 상대를 화나게 만들다’라는 뜻입니다. 귀엽다고 해서 동물의 털을 잘못된 방향으로 문지르면 동물이 오히려 성을 내는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1년 뒤 메르켈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부시 대통령은 이런 농담을 건넸습니다. “No back rubs.”(등 마사지는 이제 안 하겠다)
호주를 방문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왼쪽)이 로버트 호크 총리와 포옹하는 모습. 조지 H W 부시 도서관 센터 홈페이지
Bush’s V sign has different meaning for Australians.”
(부시의 V 사인은 호주인들에게 다른 의미다)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H W 부시 대통령도 외교 결례를 빚은 적이 있습니다. 1991년말 호주를 방문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캔버라에서 차를 타고 지나가던 중에 평화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를 보고 지지한다는 의미로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V’ 사인을 보냈습니다. ‘V’ 사인은 ‘승리’ ‘평화’ 등을 상징합니다.(부시의 V 사인은 호주인들에게 다른 의미다)
그런데 손의 방향이 문제였습니다. 손등을 바깥쪽으로 해서 ‘V’ 사인을 보낸 것입니다. ‘V’ 사인을 그릴 때는 손등을 자기 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미국에서는 손의 방향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국, 호주, 영연방 국가들에서는 손등이 바깥쪽으로 향한 ‘V’ 사인은 상대에 대한 욕을 의미합니다. 셋째 손가락을 올리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AP통신은 부시 대통령의 실수를 “호주인들에게는 다른 의미다”라고 보도했습니다.
‘V’ 사인은 중세시대부터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자주 사용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처칠 총리는 연합군과 독일에게 보내는 ‘V’ 사인의 방향을 각각 다르게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연합군에게 보낼 때는 지지의 의미로 손등을 자기 쪽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반면 독일을 향해 ‘V 사인을 보낼 때는 전투 의지를 꺾기 위해 바깥쪽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명언의 품격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붉은색 버튼을 누르는 모습. 미 국무부 홈페이지
“You got it wrong.” 라브로프 장관의 입에서 이런 대답이 나왔습니다. “you get it wrong” “you get me wrong”은 “오해하다” “틀리다”라는 뜻입니다. ‘peregruzka’는 ‘reset’이 아니라 ‘overcharge’를 뜻한다는 겁니다. 힐러리 장관은 ‘과부하’ ‘‘바가지를 씌우다’라고 적힌 버튼을 선물한 것입니다. 그래도 라브로프 장관은 러시아어로 된 버튼까지 준비한 힐러리 장관의 정성에 감동했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담을 마친 두 장관은 함께 버튼을 누르는 포즈를 취했습니다.
I do hope that Russia and the United States would never ever push any other buttons associated with initiation of destructive hostilities.”
(러시아와 미국이 파괴적인 갈등과 관련된 다른 버튼을 누르지 않기를 바란다)
버튼을 누르면서 라브로프 장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붉은 버튼은 인류의 대재앙 핵전쟁을 시작할 때 누르는 버튼입니다. 오늘 말고는 붉은 버튼을 누를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never’(결코)를 강조하기 위해 ‘ever’를 붙였습니다. 붉은 버튼 때문에 생긴 어색한 상황을 훈훈하게 마무리 지은 명발언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러시아와 미국이 파괴적인 갈등과 관련된 다른 버튼을 누르지 않기를 바란다)
실전 보케 360
롭 맨프레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의 기자회견 모습. MLB 홈페이지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미국과 일본의 결승전이 열리기 전 마이애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WBC가 월드시리즈처럼 커나갈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맨프레드 커미셔너의 대답입니다.
I don’t see it as an either or proposition.”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A와 B 중에서 선택해야 할 때 “either A or B”라고 합니다. 그런 양자택일의 상황을 ‘an either-or proposition’이라고 합니다. ‘proposition’(프로포지션)은 ‘문제’ ‘제안’이라는 뜻입니다. 앞에 ‘not’이 오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뜻이 됩니다. 양자택일이 어려울 때 “it’s not an either-or proposition”이라고 합니다.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어느 한쪽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 힘든 입장이므로 이런 식의 대답으로 빠져나갔습니다.(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1년 6월 21일 소개된 미-러 외교관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지금은 미국의 적수가 중국이지만 오랫동안 그 자리를 차지했던 것은 러시아입니다. 두 나라의 치열한 첩보전을 보여주는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미-러 관계에서 중요했던 사건들을 알아보겠습니다.▶2021년 6월 21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0621/107549230/1
2021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 백악관 홈페이지
From Stettin in the Baltic to Trieste in the Adriatic an iron curtain has descended across the Continent.”
(발트해의 슈체친부터 아드리아해의 트리에스테에 이르기까지 철의 장막이 유럽 대륙에 드리워졌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1946년 미국 방문 중 “iron curtain”(철의 장막)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처칠 총리가 만들어낸 단어는 아니지만, 그가 쓴 것이 가장 유명합니다. 냉전시대 소련과 그 영향권 내에 있던 동유럽 국가들을 가리킵니다. 커튼은 ‘가리다’라는 뜻입니다. ‘behind the curtain’(커튼 뒤)은 ‘막후’ ‘몰래’라는 뜻입니다.(발트해의 슈체친부터 아드리아해의 트리에스테에 이르기까지 철의 장막이 유럽 대륙에 드리워졌다)
We′re eyeball to eyeball. I think the other fellow just blinked.”
(우리는 서로 노려보고 있다. 저쪽 친구가 지금 막 눈을 깜빡였다)
(우리는 서로 노려보고 있다. 저쪽 친구가 지금 막 눈을 깜빡였다)
1962년 미사일 장비를 실은 소련 선박이 쿠바 앞바다로 들어오자 미국이 해상봉쇄로 맞선 사건을 쿠바 미사일 위기라고 합니다. 팽팽한 대치 상황이 며칠간 이어진 뒤 소련은 후퇴를 결정했습니다. 양쪽이 정면 대치하는 것을 “eyeball to eyeball”(안구 대 안구의 싸움)이라고 합니다. 서로 노려본다는 의미입니다. 이럴 때는 먼저 눈을 깜빡이는 쪽이 지는 겁니다. 소련이 후퇴하는 순간 백악관에서는 대책회의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딘 러스크 국무장관이 옆자리에 앉은 맥조지 번디 국가안보보좌관에게 건넨 말입니다.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한 이 발언은 미국 외교사에 길이 남는 명언이 됐습니다.
Mr. Gorbachev, tear down this wall!”
(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벽을 허무세요!)
1987년 독일을 방문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연설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을 추진하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에게 베를린 장벽을 허물 것을 호소했습니다. 연설 당시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다가 2년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냉전의 종말을 뜻하는 명언이 됐습니다.(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벽을 허무세요!)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