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 [下]제2준규-종열씨 막아야
응급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무력하게 떠도는 ‘표류’는 일상이 됐다. 이를 초래하는 원인을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도 구급차에서, 응급실에서 표류하다 누군가 생명을 잃을 수 있다.
‘표류’를 끝낼 해결책은 단순하다. 수술 의사가 지금보다 많아야 한다. 그 의사와 환자를 이어줄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이미 알고 있는 해답이다. 실행할 의무를 버려두고 있을 뿐이다.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송파소방서 잠실119구급대 소속 김재원 반장이 환자를 이송하면서 다른 자동차 운전자들에게 ‘길을 터 달라’고 안내 방송을 하고 있다.
배병인 씨가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골반뼈를 이어붙이는 수술을 받은 후에 찍은 엑스레이 사진. 배 씨는 경북과 경남에 있는 대형 병원에서 모두 거절 당하자 “내가 사는 곳에서 못 하는 수술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절망스러웠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를 해결할 방안으로 ‘순환당직제’를 제시했다. 예컨대 뇌출혈 응급 수술이 가능한 의사를 월요일엔 A병원이, 화요일엔 B병원이 상주시키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수술 의사 자체가 부족한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일 뿐이다. 권역외상센터를 둔 일부 병원이 사지 절단을 막을 혈관 수술 의사조차 못 구하는 형편이다.
설 전날인 올해 1월 21일, 배병인 씨가 부산 해운대구의 한 병원 복도에서 목발을 짚고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올 1월 1일 오후 8시 반경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앞에 대기 환자들이 몰려 있다. 차로 50분 걸리는 경기 의정부시에서 환자를 싣고 온 119구급차도 눈에 띈다.
지난달 19일 대구에서 벌어진 17세 여학생 추락 사망 사건에서는 그 시스템의 부재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구급대는 병원이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상황인지 모른 채 여러 응급실을 떠돌았고 상황실은 부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이번 복지부 대책엔 “119구급대가 태블릿PC에 입력한 환자 정보를 이송이 예정된 병원으로 전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실제 응급환자들이 이른바 ‘구급차 뺑뺑이’를 겪는 점을 감안하면 환자 수용을 문의하는 단계부터 환자 정보를 공유해야 빠른 이송이 가능하다.
1월 20일 경기 시흥소방서 구급대 이준호 반장이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던 중 경기도소방재난본부 119상황실에 전화를 걸고 있다. 갑자기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12세 남자 환자에게 수액을 맞혀도 될지 상황실에서 근무하는 의료지도 의사에게 물어보기 위해서다. 119 이송 중 환자 정보 교환은 이처럼 주로 전화로 이뤄지고 있다.
북새통 응급실도 골든타임을 잡아먹는 주범이다. 대형 병원 응급실은 저녁마다 대기 환자로 북적이지만 이들은 3명 중 2명꼴로 소형 응급실에서 치료받아도 되는 경증 환자다. 기자가 응급실을 취재하던 중에 ‘가방을 오래 쥐어서 손바닥이 하얗게 됐다’며 진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24일 오후 7시경 충남 서산시 서산의료원 지역응급의료센터 앞에 구급차가 3대 줄지어 서 있다. 이날 당번이었던 신재복 센터장은 87세 패혈증 의심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랴, 팔꿈치 관절이 빠진 5세 여아를 치료하랴 바빴다. 그 와중에 경증 환자가 몰려들어 대기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표류: 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그들이 구급차를 탔던 날’ 등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디지털 플랫폼 특화 기사는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생사의 경계에서 표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그들이 구급차를 탔던 날’
(original.donga.com/2023/sos1)
‘강남에 응급실이 없었다’
(original.donga.com/2023/sos2)
‘표류 속으로’
(original.donga.com/2023/sos3)
▽팀장: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취재: 송혜미 이상환 이지윤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하승희,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임희래 인턴
▽인터랙티브 디자인: 곽경민 인턴
본 기사는 4월 3일자 동아일보 A1⋅2⋅3면에 실렸습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송혜미 기자 1am@donga.com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