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시대 맞아 진화하는 스포츠 다큐멘터리
왼쪽부터 클럽하우스(한화이글스), 아워게임(LG트윈스)
강홍구 스포츠부 기자
《“중계방송에선 그런 거 안 알려주니까.”
지난달 30일 공개된 프로야구 LG의 스포츠 다큐멘터리 ‘아워게임: LG 트윈스’에 스토리텔러로 참여한 배우 하정우 씨가 첫번째 에피소드의 문을 열며 한 말이다. TV 중계 카메라엔 닿지 않는 승부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스포츠 팬이라면 누구나 갈증을 느끼는 이야기다.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성장과 함께 그라운드 안팎의 생생한 숨결을 전하는 스포츠 다큐멘터리도 진화하고 있다.》
●기존 팬도, 신규 팬도, OTT도 원하니까
물론 예전이라고 이런 니즈(needs)가 없던 건 아니다. 현존하는 한국 프로야구 팀을 다룬 첫 스포츠 다큐는 롯데의 2009년 시즌을 다룬 ‘나는 갈매기’였다. 2009년 시즌 개막부터 순위 다툼이 한창인 8월까지 롯데 선수단과 팬들의 이야기를 담은 ‘나는 갈매기’는 러닝타임 85분의 극장용 단편 영화였다. 그러나 아워게임은 편당 40, 50분인 8부작 시리즈로 OTT ‘티빙’을 통해 팬들과 만난다. 지난해 ‘왓챠’를 통해 공개된 ‘한화 이글스: 클럽하우스’ 역시 편당 35∼43분인 6부작 시리즈였다.
이렇게 시리즈로 제작하면 에피소드마다 다양한 관점에서 풍성하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화 구단 관계자는 “관계사 등을 상대로 내부 시사회를 진행했는데 각자 팀장급들은 감독의 고민에, 신입 사원들은 신인 선수들의 고민에 공감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야구를 넘어 사회 축소판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짧게 짧게 ‘인간적인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건 ‘규칙의 장벽’을 넘어 신규 팬에게 다가가는 데도 도움이 된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선수들의 훈련과 일상 장면 등을 담은 ‘풀 스윙’ 제작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새롭고 다양한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골프를 모르는 시청자도 골프 다큐에는 빠지도록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담긴 표현이었다.
OTT 관점에서 스포츠 다큐가 매력적인 건 팬들의 ‘충성심’ 때문이다. OTT끼리 제한된 시청자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자를 새로 ‘발굴’해야 하지만 스포츠 다큐는 기존 팬덤을 시청자로 ‘흡수’할 수 있다. ‘왓챠’ 관계자는 “‘한화 이글스: 클럽하우스’는 공개 직후 곧바로 실시간 급상승 1위를 차지했다. 이후 모든 에피스드가 꾸준히 시청자 수 최상위권을 형성했다”면서 “다른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과 비교할 때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점도 OTT에서 스포츠 다큐에 주목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사실 구단이 제일 원하니까
구단이나 스포츠 단체 관점에서 스포츠 다큐는 팬들에게 원하는 메시지를 ‘날(raw)것’처럼 보이도록 직접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언론 매체 등을 통해 메시지를 간접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잡음’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현장 직캠’처럼 ‘진짜 날것’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돌발상황을 관리하기에도 스포츠 다큐가 용이하다. 구단에서 자체 유튜브 채널 등을 놔두고 굳이 외부 OTT를 통해 구단 다큐를 방영하는 이유다.
그러니 한화의 ‘리빌딩’ 과정을 소개한 ‘클럽하우스’가 한화 구단이 왓챠와 공동으로 기획·투자한 작품이라는 사실에 놀랄 필요가 없다. 롯데 이야기를 다룬 극장용 스포츠 다큐 ‘나는 갈매기’부터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주로 ‘롯데시네마’를 통해 배급한 영화였다.
그래서 제작사는 거꾸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이는 영상을 만들려고 애를 쓴다. LG 이야기를 다룬 ‘아워게임’ 제작사이자 ‘LG유플러스’ 산하 브랜드인 ‘스튜디오 X+U’ 관계자는 “특정 팀의 홍보 다큐가 아니라 야구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보여주는 영상을 만들 수 있도록 전문 기록원과 전직 야구 선수에게 자문까지 했다”며 “적극적인 연출이나 촬영이 선수들의 경기력에 직간접의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멀리서 내밀한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는 역설적인 도전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스포츠 다큐 역사를 생각하면 이런 접근 자체가 이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학자에 따라서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기록한 ‘올림피아’(1938년)를 영화 역사상 첫 스포츠 다큐로 꼽기도 한다. ‘올림피아’는 영상 미학이라는 관점에서는 독창적이라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실제 정체는 나치에서 ‘아리안 민족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려는 목적으로 제작한 선전물에 가깝다. 스포츠 다큐 형식을 완성했다는 평을 듣는 ‘무하마드 알리, 더 그레이티스트’(1969년) 역시 흑인 인권 운동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작품이다. 스포츠 다큐는 초창기부터 ‘각본’은 없었더라도 ‘의도’는 있었던 셈이다.
종합하면 스포츠 다큐는 ‘비하인드 더 신’을 향한 팬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건 물론이고 구단이나 경기단체 관점에서도 메시지를 ‘의도대로’ 발산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OTT 역시 최소한의 투자로 메시지 발신자와 수신자가 만나는 플랫폼을 자처할 수 있다. 스포츠 다큐 제작이 당분간 늘어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올해도 잉글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 세계복싱평의회(WBC) 헤비급 챔피언 타이슨 퓨리 등을 소재로 한 스포츠 다큐가 방영될 예정이다. 내년에는 ‘포뮬러1: 서바이브 투 드라이브’ 6번째 시즌도 공개된다.
강홍구 스포츠부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