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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난도질된 소설 ‘제방공사’, 일본어 첫 번역

입력 | 2023-04-03 03:00:00

이창신 선생 일제 인권유린 고발
1934년 신동아에 연재됐다 중단
검열서 봉기과정 흐리거나 삭제
日 잡지에 실려… “당대 해학도 담겨”



일본의 시 전문지 ‘시와 사상’ 4월호 표지(왼쪽 사진). 독립유공자 이창신이 이석성이라는 필명으로 소설 ‘제방공사’를 연재한 1934년 신동아 12월호. 3회분이 실려야 했지만 일제의 검열로 첫 페이지는 글자를 알아보지 못하게 처리됐고, 나머지는 통째로 삭제됐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제공


일제강점기 신동아에 실려 조선총독부에 맞선 저항정신을 담아냈던 소설 ‘제방공사(堤防工事)’가 일본어로 처음 번역돼 소개됐다.

전남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은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가 일본 시 전문 잡지 ‘시와 사상’ 4월호에 독립유공자 이창신(1914∼1948·사진)의 소설 ‘제방공사’를 일본어로 번역해 소개했다”며 “이 소설이 일본어로 번역된 건 처음”이라고 2일 밝혔다.

제방공사는 이창신이 이석성(李石城)이라는 필명으로 1934년 ‘신동아’ 10∼12월호에 게재한 소설이다. 소설은 조선에서 가져가는 쌀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조선총독부가 전남 나주 영산강 일대에 제방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일제의 탄압을 견디다 못한 조선인 노동자들이 봉기하는 과정을 그렸다. 나주에서 태어난 이창신은 1931년 총독부 주도로 벌어진 영산강 제방공사 현장에서 일본인 공사 감독들이 자행하는 인권유린 실태를 목격하고 이 소설을 집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창신은 앞서 1929년과 이듬해 광주학생운동 관련 시위를 벌이다 체포, 구금된 바 있다.

소설은 일제의 검열 탓에 200자 원고지 75장 분량을 끝으로 연재가 중단되면서 미완으로 남았다. 조선총독부는 소설 속 주인공 동수가 일제의 폭압에 맞서 봉기하기로 결심하는 1, 2회분 일부를 복자(伏字·글자를 알아보지 못하게 만듦) 처리했다. 봉기가 본격 전개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동아 12월호 연재분(3회분)은 제목이 실린 첫 페이지를 복자 처리하고 나머지는 전면 삭제했다.

소설을 번역한 김 교수는 “주인공 동수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공사 현장에 나섰다가 조선인을 향한 일제의 폭압을 직시하고 저항하기로 결심한다”며 “비록 소설은 미완으로 남았지만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담은 이 작품을 일본에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소설에는 1930년대 조선인 노동자들의 속어와 은어 등이 풍부하게 담겨 당대의 해학과 언어문화도 엿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번역을 통해 ‘제방공사’를 읽은 일본 문학평론가 사와다 아키코(澤田章子) 씨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작품과의 공통점에 눈길이 간다”고 밝혔다고 기념관은 전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