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세 22학번인 지방대 의대생. 이 늦깎이 학생의 사연이 얼마 전 유튜브 등에서 화제가 됐다. 서울 명문대 97학번인 그는 17년간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3수 끝에 의대에 합격했다. 마흔 넘어 얻은 늦둥이 딸을 위해 ‘정년 없는 전문직’이 필요하다고 여겨 의대를 선택했다고 했다. 최근 의대엔 번듯한 직장을 포기한 ‘유턴족’을 비롯해 재수 이상의 N수생이 늘어나 고령화되고 있다.
▷교육정책연구단체인 ‘교육랩공공장’ 조사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전국 의대 정시 합격자 4명 중 3명은 N수생이었다. 전체 5000여 명 중 N수생이 77.5%나 됐다. 지난해 서울 소재 대학의 N수생 비율이 34.5%인 것과 비교하면 2배 넘게 차이 난다. 유독 의대에 N수생이 쏠리는 건 늦깎이 학생의 기대처럼 ‘정년 없고 연봉이 높다’는 것 때문이다. N수로 몇 년 늦게 출발해도 남는 장사라는 계산이다.
▷N수생은 주로 어디서 올까. 입시업계에선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이공계와 KAIST 등 4개 과학기술원 학생들이 N수생의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본다. 수시를 위해 내신을 신경 써야 하는 고3과 달리 이들은 정시 과목에만 집중할 수 있어 수능 고득점에 유리하다. 여기에 지방 의대에서 서울 지역 의대로 갈아타려는 수요도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이 옮기고 간 빈자리로 인해 이공계 학과나 지방 의대들은 운영에 어려움을 겪거나 다시 편입생을 뽑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한다.
▷의대 지망생은 화수분처럼 늘지만 소아과 흉부외과 등 필수 진료 의사는 태부족이다. 한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의사는 모르는 것도 죄가 되는 직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만큼 사명감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단지 공부 잘한다는 이유로, ‘정년 없고 높은 연봉의 전문직’ 지위를 얻겠다는 목표만으로 너도나도 의대 문을 두드리는 현실이 씁쓸하다. 전국 대학 의대 정원은 약 3000명. 수능 응시생 중에서 상위 1% 내의 인재들이 간다. 이런 최고급 두뇌들을 병원 말고도 반도체, 인공지능, 로봇, 우주항공 등 첨단 분야 연구실에서도 골고루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게 개인도, 국가도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길이기에….
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