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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1년 앞두고 돌아온 삭발의 계절[광화문에서/김지현]

입력 | 2023-04-03 21:30:00

김지현 정치부 차장


지난달 30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 오랜만에 바리캉이 등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일본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반대 및 대일 굴욕외교 규탄대회’에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소속 윤재갑 의원(전남 해남-완도-진도·초선)이 삭발식에 나선 것. 윤 의원 뒤로 이재명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 등도 윤석열 정부 규탄 피켓을 손에 든 채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절대 반대”를 외쳤다.

3일에도 여의도에선 만개한 벚꽃잎과 함께 머리털이 흩날렸다.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쌀값 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선 역시 농해수위 소속인 민주당 신정훈(전남 나주-화순·재선), 이원택(전북 김제-부안·초선) 의원 등이 윤석열 대통령의 양곡관리법 거부권 시사 가능성에 항의하며 집단 삭발을 했다.

삭발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야당 정치인들의 최후의 투쟁 수단이었다. 자신의 메시지를 사회에 전달하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겠다는 가장 절박한 표현이었다.

2019년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권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항의하며 릴레이 삭발식을 벌였을 때 “110석이나 되는 제1야당이 국민으로부터 이미 받은 수많은 정치적 수단을 외면하고 삭발 투쟁이나 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던 이유다.

당시 정의당 대표였던 심상정 의원은 “삭발은 몸뚱어리밖에 없는 약자가 자기 삶을 지키고 신념을 표현하는 최후의 투쟁인데 (자유한국당이) 국민이 준 제1야당의 막강한 권력을 쥐고 ‘약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때 집권여당이었던 민주당 의원들도 “삭발을 통한 ‘정치쇼’”(정춘숙 의원), “참 코미디 같다”(이재정 의원), “머리카락이 아니라 양심의 털부터 깎으라”(노웅래 의원)고 일제히 평가절하했다. 그랬던 민주당이 야당이 된 지 1년도 안 돼서 자신들이 조롱했던 삭발식에 나선 것이다.

169석의 거야(巨野)이자 원내 1당인 민주당이 벌써 삭발 카드를 꺼내든 건 그만큼 제1야당으로서의 메시지 파워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요즘 우리 당의 메시지는 방향은 옳다고 본다. 야당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비판과 지적이다. 그런데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여당에서 ‘이재명 방탄 정당 주제에’라고 하는 순간 모든 명분이 사라진다. 이 대표가 입바른 소리를 해도 사람들이 ‘너나 잘하세요’라고들 하지 않느냐”라고 했다.

실제 지난주 민주당이 ‘한일 정상회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하자 국민의힘은 기다렸다는 듯 “또 이재명 방탄용”이라고 일축했다.

삭발식이 결국 어느덧 1년 앞으로 다가온 22대 총선 공천을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한 민주당 의원은 “결국 총선을 앞두고 농해수위 의원들만 삭발해서 각자 지역에 이름을 알리는 수혜를 입은 것 아니냐”며 “요즘 시대에 삭발하면서 강성으로 나가는 게 국민들 눈에 꼭 좋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2019년 ‘조국 삭발’에 동참했던 보수 야권 의원들의 공천 생존율은 50%에 그쳤다. 삭발도 공천을 보장하진 못한다는 얘기다. 민주당과 의원들이 꼼수를 내려놓고 진짜 민생을 위해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면 그렇게 티 내지 않아도 유권자도 알 건 다 안다.


김지현 정치부 차장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