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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뱅킹 시대, 금융위기 대응도 달라져야 [동아시론/강성진]

입력 | 2023-04-04 03:00:00

‘디지털 뱅크런’ 이틀 만에 파산한 해외 은행
모바일 뱅킹 이용률 40% 육박 韓도 재연 우려
예금 보호 강화, 긴급유동성 지원책 필요하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국제경제학회장


최근 세계 주요 은행들이 연이어 파산하면서 뱅크데믹(bankdemic·은행과 팬데믹의 합성어) 공포를 넘어 금융위기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과 뉴욕 시그니처은행 파산, 실버게이트은행의 자체 청산에 이어 스위스의 대형 투자은행(IB)인 크레디트스위스(CS)가 매각되고, 독일 최대 투자은행인 도이체방크 주가가 폭락했다. 이번 은행 파산 공포의 확산은 그 원인과 경과가 과거와는 다르게 나타나면서 금융위기 대응에 대한 시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과거 파산 사태는 금융기관의 탐욕스러운 투자 행태에서 왔다. 1980년대 저축대부조합(S&L) 사태는 높은 주택담보대출 의존도가 주요 원인이었다. 당시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라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 정부의 금리 인상에 의한 수익성 악화를 극복하기 위해 고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면서 발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도 유사하다. 당시 금융기관들이 높은 위험성이지만 이자율이 높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을 확대하고 파생상품을 창출한 것이 위기의 주원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높은 이자율과 부동산 경기 침체로 대출금 상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금융기관의 연쇄 파산이 일어난 것이다.

반면 최근 파산한 은행들의 투자 행태는 과거와 다르다. SVB는 대표적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았다. 도이체방크의 주가 하락도 주목할 만한 재무건전성 문제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설립된 지 40년 된 SVB와 167년 된 CS는 부실 우려가 나타난 지 단 이틀과 일주일 만에 각각 파산했다. 전통적으로 파산의 주원인으로 보는 고수익·고위험 투자행태가 파산의 핵심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위기의 확산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의한 급격한 정보 확산이라는 ‘바이럴 디지털(viral digital)’, 그리고 모바일 뱅킹의 위력을 실감하게 한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다른 측면이다. 디지털로 실시간 소식을 접한 이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모바일 뱅킹을 통해 ‘디지털 뱅크런’을 한 것이 이번 금융위기 공포의 핵심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금융시장의 환경 변화 속에 대응 방안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예금 예치자가 부실 징후로 예금액 보장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금융기관이나 정부의 대응 정책이 결정되기도 전에 모바일 뱅킹을 통해 신속하게 예금 인출을 진행하면서 금융기관이 파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규모 금융기관은 더욱 높은 위험도에 노출될 수 있다. 모바일을 통해 재무건전성 정보의 확산이 급속하게 이루어지면 금융기관 간 건전성 차이가 바로 예금 인출의 원인이 되고 부실 금융기관은 순식간에 파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의 뱅크런 사태는 디지털 산업이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한국 경제구조의 불안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전체 은행 거래의 39.7%(2022년)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모바일 뱅킹 활용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유사한 사태가 일어났을 때 감당하기 힘든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세대에 풍요로운 삶을 제공해줄 디지털 혁명을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시점에 정부의 친시장적인 대응 방안이 매우 중요하다. 시장을 규제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어두운 면을 제거해 나가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예금자보호제도의 강화다. SVB가 파산한 후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는 즉각적으로 예금 전액을 보호한다고 발표했다. 예금보험 25만 달러(약 3억3000만 원) 한도를 넘는 금액도 보호한다는 것이다. 한국도 1995년 제정된 예금자보호법으로 5000만 원 한도에서 예금을 보장하고 있지만 이번 모바일 뱅크런의 전개 양상을 보면 턱없이 부족하다.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을 때 긴급하게 유동성 지원을 해줄 수 있는 기금을 조성하거나 지원제도를 사전적으로 확충해줄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이 조성하고자 하는 새로운 유동성 지원책인 BTFP(Bank Term Funding Program)가 대표적이다. 국채나 모기지채권(MBS)을 담보로 1년간 액면가로 자금을 대출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부실이 나타난 이후에 예금 인출을 강제로 금지하거나 정부 주도로 금융기관을 강제합병하는 반시장적 정책은 안 된다. 시장에 문제가 있을 때는 책임을 강하게 물어야 하지만 정부가 시장을 왜곡하고 부담을 주는 정책으로는 우리에게 다가올 디지털 시대의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국제경제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