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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맞설 ‘잠재적 핵역량’ 확보 추진해야[윤상호 군사전문기자의 국방이야기]

입력 | 2023-04-04 03:00:0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지난달 27일 ‘핵무기 병기화 사업’을 지도했다면서 북한이 공개한 ‘화산-31’로 명명된 전술 핵탄두. 노동신문 뉴스1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북한이 3대(代)에 걸쳐서 핵을 개발하는 궁극적 목표가 대미 전략적 억제력 확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지금도 적지 않다. 핵 초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워싱턴과 뉴욕을 핵으로 때릴 수 있음을 과시해 차후 협상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도 대미 협상의 ‘판돈’을 키우려는 저의로 해석한다.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의 핵은 대미 견제용이지 실전용으로 볼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의 ‘핵우산’에 북한이 감히 도전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전술핵 모의 폭발시험’을 잇달아 참관하고, 직경 50cm의 전술핵탄두까지 대거 공개한 것은 이 같은 판단이 얼마나 안이한지를 보여주는 중대 사건이라고 필자는 본다.

최종 핵 타깃은 대한민국이라고 선전포고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수 kt(킬로톤·1kt은 TNT 1000t 파괴력)∼20kt 수준의 저위력 전술핵은 ‘사용 가능한 핵무기’로 불린다. 북한이 공개한 폭발고도(500∼800m)에선 나가사키 원폭(20kt) 이상의 전술핵으로 최대한의 살상 효과를 볼 수 있다. 서울시청 800m 상공에서 20kt급 원폭이 터지면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최소 반경 5km 구역은 폐허가 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북한의 핵기습 역량이 급속히 진화하는 점이다. 북한은 이동식발사차량(TEL)과 잠수함, 열차에 이어 저수지와 지하 발사장 등 어디서든 핵을 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했다. 초저고도로 궤도 변경이 가능해 탐지 추적이 힘든 장거리 순항미사일에 전술핵이 장착되는 것도 시간문제로 봐야 한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군 고위 관계자는 “이제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은 제로(0)”라고 잘라 말했다. 그 이유로 미국의 확장 억제가 사실상 한계에 봉착한 점을 들었다. 북한의 핵이 미국의 핵우산보다 빠르고 치명적으로 대한민국을 초토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 고도화됐다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핵을 가질 수 없는 한국의 처지를 북한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북한의 고도화된 핵을 재래식 무기와 미국의 확장 억제로 대응해야 하는 한국은 ‘한 팔을 묶고 링 위에 오른 권투 선수’와 같다고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월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언급한 전술핵 배치와 자체 핵무장 발언도 대한민국의 존립과 생존을 위협하는 ‘남북 핵 불균형’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 없다는 고심을 드러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 때문에 군 안팎에선 잠재적 핵 개발 능력 등 최소한의 ‘핵 주권’을 회복하는 것이 북핵 억제의 실효적 대책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미국과 동맹 차원의 결단을 통해 북핵 위협에 맞설 수 있는 잠재적 핵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핵추진잠수함 도입이 거론된다. 한미의 기술력을 합쳐 수년 내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하는 한편 미국으로부터 핵추진잠수함용 핵연료(저농축 우라늄)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추진잠수함은 잠항 능력과 속도 등에서 재래식 잠수함을 압도한다. 핵미사일을 실은 북한 잠수함을 상시 추적하고, 유사시 핵 단추를 거머쥔 북한 지휘부를 쥐도 새도 모르게 궤멸시킬 수 있다. 호주에 이어 한국이 핵추진잠수함을 갖게 되면 미국의 대북 억제와 대중 견제 등 역내 전략적 입지도 한층 강화될 것이다.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통해 평화적 목적의 농축과 재처리 역량을 회복하는 것도 필요하다. 1992년 평화적 목적의 우라늄 농축과 핵 재처리까지 포기한 비핵화 선언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북한의 핵 위협이 임계점에 도달한 상황에서 세계 5위권의 원자력 선진국에 걸맞은 ‘핵 주권’을 되찾는 것은 경제·안보적 국익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더욱이 한반도 주변국들은 이미 핵강대국이거나 언제든지 핵무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상황이다. 1980년대 후반 재처리와 농축 권한을 확보한 일본은 수천 기 분량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

섣부른 핵무장론은 경제 외교적 제재와 한미 관계 악화 등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비핵화 족쇄’에 묶여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설 최소한의 핵 주권조차 이대로 포기하는 것도 국익을 위한 길이 아니다. 국가 대계 차원에서 치밀하고 전략적인 ‘핵 자강론’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때라고 본다. 현실적 한계만 따져 잠재적 핵 역량을 영영 포기하기에는 현 안보 상황이 너무도 절박하고 엄중하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