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나는 지난 3년 6개월 동안 아파트 현장의 도배 전체를 책임지는 소장님 밑에서 벽지를 발라 왔다. 그러다가 올해 3월부터는 소장님 직영팀에서 독립해 초보 동반장이 되어 ‘동띠기’로 작업을 하게 되었다. 동띠기란 한 동을 떼어서 맡는다는 ‘동 떼기’에서 유래된 말로 추측되는데, 아파트 몇 동 혹은 몇 가구를 맡아서 주어진 기간 내에 독립적으로 도배를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전과는 달리 모든 순간 오롯이 나의 힘으로 능동적인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하고, 그에 따른 책임 또한 온전히 내 몫이 된다. 도배는 이미 기술자가 되었지만 동반장은 처음이라서 모든 일이 새로웠다.
그동안 벽지 바르는 일을 하면서 다른 동반장님들이 하는 여러 작업을 가까이에서 봐왔기 때문에 내게도 기회가 오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예를 들어, 동반장들은 현장에 들어가 가장 먼저 천장과 벽의 치수를 재는데, 나도 틈틈이 연습을 해보았고 크게 어려울 것 없다고 자신했었다. 그러나 막상 동띠기가 되어 내가 맡은 곳의 천장과 벽의 치수를 재려고 하니 혹시라도 벽지가 모자랄까 봐 넉넉하게 측정하였고 그 결과 오히려 벽지가 자꾸 남았다. 남는 벽지를 아끼기 위해 여기에 쓰고 저기에 쓰느라 시간을 더 많이 허비하게 되었다. 차라리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처음부터 꼼꼼하고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결국에는 시간을 아끼는 길이고, 나아가 비용도 절감하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직접 겪어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또한 여러 사람과 소통하고 협의하는 일도 간단치 않았다. 연계된 다른 공정의 작업자들이나 건설사 담당 직원들과 직접 소통하고 협의해야 하는 일이 훨씬 더 많아졌다.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들이지만 일정 조율이 잘 되지 않아 겹치게 되면서 갈등 상황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원활한 소통과 조정이 필요했지만 다른 공정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나는 이런 소통조차 어렵기만 했다. 다른 공정에 대해서도 더 눈여겨보고 알아둘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이 밖에도 모든 작업 과정을 내내 함께하는 파트너와의 소통에도 새로운 훈련이 필요했고, 다른 도배 반장님들에게 모르는 것들을 물어보며 조언과 도움을 구해야 할 때도 많아서 먼저 다가가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자세가 그전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상상하는 것과 손발을 움직여 실제 해보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다. 나의 손과 발과 머리를 직접 써서 체험하는 것은 일을 좀 더 분명하고 정확하게 알게 해준다.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처음 도배를 시작할 때 가졌던 마음이다. 그런데 그 생각이 새롭게 변화된 동띠기 상황 속에서 되살아났다. 섣불리 미리 판단하지 말아야겠다.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쳐 알게 된 귀한 깨달음이다.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