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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이 “권력 나온다”고 한 그곳, 대구 서문시장[정치 인&아웃]

입력 | 2023-04-04 06:00:00


● 지지율 하락 위기 때마다 서문시장 찾은 尹 대통령
“선거일 바로 전날 마지막 유세에서 서문시장에서 보내주신 뜨거운 지지와 함성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생각을 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지금도 힘이 난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서문시장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은 것. 윤 대통령은 또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제가 여러 차례 서문시장에서 격려와 응원을 힘껏 받았다”며 “국정의 방향, 국정의 목표가 오직 국민이라는 초심을 다시 새기게 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열린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며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윤 대통령은 이날 서문시장 입구에서부터 행사장까지 500m 정도를 천천히 걸으며 시장 상인과 시민들과 일일이 인사를 하거나 악수했다. 1만여 명이 운집해 윤 대통령 부부가 인사하는 데만 30분 정도가 걸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원래 차량에서 내리기로 했던 지점보다 먼저 내려서 걸었다”며 “서문시장에 모인 시민들과 더 많은 인사를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윤 대통령의 밝은 표정이 그날의 분위기를 다 말해주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만큼 윤 대통령에게는 서문시장이 특별한 공간이라는 것.

● 尹 대통령 “서문시장만 오면 아픈 것도 다 낫고 힘을 받아”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당선 이후 세 차례나 서문시장을 찾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26일 서문시장을 방문해 “제가 어려울 때도 서문시장과 대구 시민 여러분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오늘 제가 기운 받고 가겠다”며 “저는 정치를 시작하고 전통시장을 많이 찾았다. 전통시장은 민심이 모이는 곳이고, 민심이 흐르는 곳”이라고 밝혔다. 당시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3개월 만에 30%를 밑돌던 상황.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이 보수 지지세가 강한 대구의 상징적 장소인 서문시장을 찾아 지지층 결집과 민심 다지기를 노린 행보”라는 해석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었던 지난해 4월 12일에도 서문시장을 방문해 “서문시장만 오면 하여튼 뭐 아픈 것도 다 낫고 엄청난 힘을 받고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선 후보 시절 총 3차례 서문시장을 방문한 사실을 언급하며 “어떻게 보면 권력이 서문시장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열린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식’에서 공연단을 격려하고 있다. 뉴시스

실제로 윤 대통령의 서문시장 사랑은 대선 유세 때도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3·9대선 투표일 전날 제주, 부산, 대구, 대전, 서울을 훑는 상행선 유세 가운데 서문시장을 찾아 “제가 22일간 선거운동을 계속하다 보니 목이 쉬어 말이 안 나오는데 서문시장에 오니 힘이 난다”며 “경북이, 대구가, 서문시장이 제 정치적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승선까지 죽기로 뛰어야 하는데 마지막에 이 서문시장 기(氣) 받고 가렵니다”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도 서문시장을 각별하게 챙긴 바 있다. 김 여사는 1월 11일 서문시장을 단독으로 방문해 설 명절 물품을 둘러보고 소상공인들을 격려했다. 김 여사는 당시 한 상인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재방문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1일 서면 브리핑에서 “서문시장 상인들은 100주년 기념 인터뷰 영상에서 올해 1월 김 여사가 서문시장에서 한 재방문 약속을 지켜준 데 대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한 배경이다.

윤 대통령의 이번 서문시장 방문은 약속을 지켰다는 의미도 있지만, ‘주 최대 69시간 근무’ 논란과 대일 외교 비판에 지지율이 하락한 상황에서 분위기 전환을 꾀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서문시장 자체를 좋아하는 건 분명하다”며 “운집한 시민과 소통하면서 소위 말하는 ‘기를 받는 것’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평가했다.

● 100년 역사, 대규모 유동 인구로 ‘보수의 성지’ 된 서문시장
서문시장은 경북의 중심 도시인 대구에서도 가장 크고 오래된 시장이다. 올해 100주년을 맞은 서문시장의 옛 이름인 ‘대구장’은 강경장, 평양장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장터로 꼽혔다. 한 대구지역 의원은 “서문시장 규모가 대구의 다른 시장보다 압도적이다”며 “점포가 4500개에 달하고, 방문하는 인원만 일일 1만 명이나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서 깊은 시장으로서 많은 사람이 모이면서 다수의 정치인이 방문했고, 덩달아 정치적 상징성도 커졌다”며 “자연스럽게 서문시장은 보수의 성지가 됐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열린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며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실제로 보수 정치인들은 정치적 고비에 직면하거나 새 출발을 하기에 앞서 서문시장을 방문한다. 보수 지지세가 강한 대구·경북(TK) 지역에서 서문시장의 의미가 남다르다는 것.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도 서문시장을 즐겨 찾았다.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9월 7일 서문시장을 찾았다. 박 전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돈 시점에 서문시장을 찾은 만큼 정치적 해석이 뒤따랐다. 당시 여권에서는 “국정동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고향인 대구와 보수의 성지 서문시장을 방문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2012년 9월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다녀간 지 3년 만에 박 전 대통령이 서문시장을 방문하자 대구 시민들은 환호를 보냈다. 박 전 대통령은 웃음 띤 얼굴로 손을 흔들며 화답했고, 대화를 나눌 때는 평소보다 목소리 톤이 올라가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12월 1일 서문시장이 큰불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때도 전격적으로 현장을 찾았다. 당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에 몰렸던 상황이었지만, 서문시장의 피해는 외면할 수 없었던 것.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재임 중이던 2009년 12월 2일 대구를 찾았다가 예정에 없이 서문시장을 깜짝 방문했다.

반면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서문시장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그 대신 문 전 대통령은 2019년 3월 대구 칠성시장을 방문했다. 서문시장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칠성시장을 찾은 것을 두고 당시 지역 정가에서는 “보수 진영 대통령들이 다녀가지 않은 곳을 방문하려는 뜻도 있었을 것”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