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우유값] 2013년 도입 원유가 연동제 영향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의 월마트 매장. 이곳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우유인 월마트의 그레이트 밸류(Great Value) 하프 갤런(1.89L)이 3.38달러였다. L로 환산하면 1.78달러(약 2340원). 같은 용량(1L)의 ‘서울우유 흰우유’가 대형마트에서 2870원, 편의점에서 3050원에 팔린다. 환율 급등에도 한국 우유가 미국 우유보다 30%가량 비싼 것. 이 같은 가격 격차는 각국 물가 수준을 감안한 구매력평가(PPP) 환율로 비교하면 더 커진다.
동아일보가 3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제연구원과 함께 PPP 환율로 미국과 한국 우유값을 비교한 결과 국내 시중 우유 1L의 소매가격(2.839달러)은 미국(1.173달러)의 2.4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로 원유 가격 연동제를 도입한 지 10년이 됐지만 시장 수요를 감안하지 않은 가격 정책이 이어지고 고비용 생산 구조가 고착화되며 소비자에게 값비싼 우유의 부담을 지우게 됐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비싼 우유값이 커피, 빵, 과자 등 식품 물가에 전방위 ‘밀크플레이션’을 부추겼다”고 했다.
생산비 연동 原乳가격제 10년… 우유값 37% 올랐다
수요 줄어도 오르는 우유값
낙농가 원유가 보장에 과잉생산
우유업체는 계약물량 의무 매입
결국 소비자에 인상분 전가된셈
한국 우유 가격이 미국의 2.4배가 넘을 정도로 비싸진 것은 10년 전인 2013년 낙농가 보호 등을 목적으로 도입된 ‘원유 가격 연동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유(原乳)는 소에서 갓 짜낸 우유를 일컫는데, 한국은 2013년부터 원유 생산에 드는 비용, 즉 생산비 증가분을 반영해 매년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수요가 줄어도 축사 유지비, 인건비, 사료비 등 생산 비용이 급등하며 고비용 구조가 고착화돼 원유 가격도 덩달아 올라가게 됐다.
● 수요-공급 원칙 무관 ‘원유 가격 연동제’
실제로 국내 우유 가격은 원유 가격 연동제가 도입된 2013년 이후 가파르게 올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월 우유 소비자물가지수는 116.4로 10년 전인 2013년 2월(84.8)보다 37.3% 올랐다. 소비자가격이 10년간 37.3% 올랐다는 뜻이다.
하지만 농가는 원유 가격이 보장되는 만큼 과잉 생산을 이어갔다. 일례로 2020년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우유 급식 물량이 갑자기 줄었지만 제조사는 연초 계약대로 낙농가로부터 물량을 사와야 했다. 2021년 마시는 우유(음용유) 수요는 170만 t이었지만 쿼터제로 유업체는 203만4000t을 매입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 보조금도 지급된다. 낙농가에는 원유 생산 지원을 위해, 우유업체에는 비싸게 원유를 사오느라 난 적자 일부를 보전해주는 명목이다. 지난해 이렇게 쓴 예산이 838억 원이었다.
여기에 원유 생산단가가 급등하고 고비용 구조가 이어지며 가격 왜곡이 심화됐다. 국내 농가는 사료의 95%를 수입에 의존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사료 가격이 폭등했다. 러시아는 배합 사료 세계 5위권 수출국인데 축산 농가 생산비 중 사료 비중이 55%에 이른다. 목축지가 좁아 축사 건축과 사료 구입, 유지와 인건비에 몇 배의 비용이 든다.
● 우유업체, 소비자에게 가격 전가
제조사도 원유 가격 인상분을 소비자가격에 반영하며 부담을 전가했다. 한 유업계 관계자는 “원유가 가공되며 마진이 붙을 때마다 국내 판매가격이 비싸진다”고 했다.
낙농가라고 마냥 웃을 수는 없다.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지면서 국산 우유 자급률은 2001년 77.3%에서 20년 만에 45.7%로 떨어졌다. 유업체들이 치즈, 버터 등 소비가 늘고 있는 유가공품을 만들 때 비싼 국산 원유 대신 저렴한 수입 원유를 쓰기 시작해서다. 낙농가 보호를 위해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 이런 부작용을 감안해 정부는 올해부터 원유 차등가격제를 실시한다. 음용유에 들어가는 원유 가격은 높게 책정하는 대신 가공유에 들어가는 원유 가격은 낮게 책정하는 것. 제조사 부담은 줄었지만 낙농가와 유업계의 협의로 원유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는 그대로다.
전문가들은 우유 가격 왜곡을 막으려면 원유 생산의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고 치즈 등 최근 수요가 높아진 유제품용 원유로 전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상곤 경상국립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생산량을 현 수준으로 끌고 가면 (수입 유제품의 관세 폐지 이후) 수입 물량이 더 들어올 텐데 공급 과잉 문제가 심해질 것”이라면서 “원유 생산의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고 생산 감소와 업종 전환을 유도하는 로드맵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어바인=정서영 기자 ce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