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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 수익률 꼴찌… 年평균 2%에도 못미쳐

입력 | 2023-04-04 03:00:00

[리셋 K금융, 新글로벌스탠더드로]
〈2〉 K디스카운트 못 벗어나는 한국
실망한 개미들 해외증시로 이탈




국내 굴지의 반도체 회사를 다니는 40대 김모 씨는 국내 주식에는 투자하지 않고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주로 투자하는 ‘서학개미’다. 올해 성과급을 받은 김 씨는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 주식 10주를 딸에게 사줬다. 그는 “한국 증시의 성장성은 한계가 있다고 보는 투자자들이 많다”며 “앞으로도 미국 중심으로 세계 경제가 성장할 것으로 생각해서 장기적 관점에서는 미국 기업에 투자하려 한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의 수익률을 비관하면서 김 씨처럼 한국 주식을 외면하는 개인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글로벌 운용사 JP모건자산운용이 올해 발간한 ‘가이드 투 더 마켓’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2013∼2022년) 동안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한국 지수는 연평균 1.9% 상승하는 데 그쳤다. 한국은행이 장기적 관점에서 목표로 하는 물가상승률(2%)에도 못 미치는 성과다. 각국 증시의 연평균 수익률은 미국(12.6%)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대만(10.3%)과 인도(7.6%), 일본(5.9%), 중국(5.5%) 등 아시아 주요국도 한국보다 좋은 성과를 냈다. 반면 최근 10년간 연평균 변동성은 한국이 21.3%로 중국(24.6%) 다음으로 높았다. 미국(14.7%)과 일본(14.0%) 등 선진국 증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결국 해외 투자자들에게 한국 증시는 기대 수익률은 극히 낮은데 세계 최고 수준의 변동성을 감수해야 하는 시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JP모건자산운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 시장의 주가순자산비율(PBR)도 0.9배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1배 미만으로 집계됐다. 한국 증시의 가치가 국내 상장사가 보유한 자산의 장부가에도 못 미칠 만큼 저평가됐다는 뜻이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의 등장과 정부의 인식 개선 등으로 변화의 조짐도 관찰되긴 하지만 자본시장의 수준이 경제 규모를 따라가지 못하는 고질병은 여간해서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국계 운용사 대표는 “비즈니스를 떠나 숫자만 놓고 보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존재하는 건 분명하다”며 “지배구조 문제와 낮은 주주환원율이 투자를 주저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짠물 배당-지배구조-관치 논란… 韓 증시, 베트남-比보다 저평가



상장기업 이익 재벌 총수 등에 집중
주주배당 선진국 절반 수준 그쳐
기업 CEO 선임 관여 관치 논란도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시장의 저평가 현상) 용어가 일반화된 이래 한국 증시는 해외 선진시장에 비해 ‘재래시장’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떨치지 못했다. 선진 증시에선 제값을 치르거나 프리미엄(웃돈)을 줘야 살 수 있는 주식이 한국 증시에선 실적이나 덩치가 엇비슷한 기업이라도 주식 가치가 깎여서 거래된다는 뜻이다. 심지어 요즘 한국은 대만 등 비슷한 경쟁국은 물론이고 신흥시장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요인으로는 취약한 기업지배구조와 미흡한 주주 환원 등이 꼽힌다. 이에 더해 공매도 규제 등 낡은 관행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법제도, 무분별한 관치 역시 자본시장 선진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반값 할인’ K디스카운트

2일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12∼2021년 한국 상장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평균 1.2배로, 선진국(2.2배)은 물론이고 신흥국(2.0배)보다 낮은 수준이다. PBR은 기업이 보유한 순자산 대비 주가 수준으로, PBR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주식이 저평가돼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의 평균 PBR은 분석 대상 45개국 가운데 41위로 필리핀(14위), 베트남(11위), 브라질(30위), 이집트(34위) 등 웬만한 신흥국보다도 뒤처졌다. 김준석 자본연 연구위원은 “분석 기간 내내 대부분의 섹터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관찰됐다”며 “선진국과의 격차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주식 가격을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주가수익비율(PER)도 비슷한 양상이다. 같은 기간 한국 상장사의 PER은 평균 17.0배로 선진국(22.0배)과 신흥국(21.3배)보다 낮았고, 분석 대상 38개국 중 29위였다. 2021년부터 미국 주식에만 투자하고 있다는 직장인 김모 씨(40)는 “한국에도 삼성이나 LG, 현대차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있지만 애플이나 테슬라와 같은 혁신적인 기술력과 창의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 ‘짠물’ 배당과 후진적 지배구조도 원인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의 저조한 수익성, 성장성과 함께 미흡한 주주 환원 수준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주된 원인으로 보고 있다. 현금 배당과 자사주 매입금액을 총자본으로 나눈 주주 환원 수준을 측정한 결과 2012∼2021년 한국은 45개국 중 43∼45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짠물’ 배당으로 유명하다. 국내 기업들의 2021년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배당금 비율)은 19.1%로 영국(48.2%), 독일(41.1%), 미국(37.3%) 등에 비해 크게 낮았다. 심지어 대만(54.9%)과 중국(35.0%), 일본(27.7%) 등 아시아 주요국과도 차이가 크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제조업 기반인 한국은 운전자본이 중요하기 때문에 배당 대신에 현금을 유보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정부가 규제부터 풀고 기업의 성장성을 확보한 뒤에 배당성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도 발목을 잡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글로벌경쟁력지수(GCI)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지배구조는 140개국 가운데 100위 수준이다. 상장기업의 이익이 모든 주주에게 돌아가지 않고 재벌 총수나 일부 지배주주에게 집중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최근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사례에서 나타나듯 기업들의 ‘쪼개기 상장’으로 개인 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반복되는 것도 저평가의 주요 원인이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싫다면 주주들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나타나는 소액주주 연대와 행동주의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했다.

‘주인 없는 기업’으로 분류되는 KT나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CEO) 선임을 두고 불거지는 관치 논란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회사 경영자는 주주 이익을 최대한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경영자가 주주보다는 정부의 눈치를 더 많이 보고 있다”며 “외국에서는 보기 힘든 현상”이라고 꼬집었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김수연 기자 suy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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