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 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막대한 혈세를 들여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다.” (윤석열 대통령)
“윤 대통령이 국회가 통과시킨 법안마저 ‘거부권’이란 칼을 쥐고 마음대로 휘두르면서 입법부를 겁박하고 있다.”(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대통령실·여당과 야당은 4일 윤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것을 두고 거세게 맞붙었다. 민주당은 “대통령이 절박한 농심을 매몰차게 거부하고 농민 생존권을 볼모로 삼았다”고 맹폭했다. 국민의힘은 “거야(巨野)의 위헌적 입법 폭주에 따른 농가파탄법에 대해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을 발동한 것”이라며 “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임 당시) 6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맞받았다.
● “쌀 의무매입법, 왜 文정부 반대했겠나”
양곡관리법 논란의 핵심은 개정안 통과 이후 쌀값 추이와 농가소득 문제다. 정부의 쌀 의무 매수 이후 쌀값이 떨어지면 농가 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윤 대통령도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막대한 혈세 투입 불가피, 쌀 과잉 생산 우려 등을 거부권 행사 이유로 꼽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쌀 과잉 생산으로 지금보다 쌀값이 훨씬 더 떨어져 타격은 농민이 고스란히 받는다. 국민 혈세 낭비 법안”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2019년 쌀 의무매입법을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하자 문재인 정부가 반대했다”며 “문재인 정부는 왜 지금 우리처럼 이 법안을 반대했겠느냐”고도 했다.
실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개정안 도입 시 2030년 쌀 초과생산량이 63만 t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쌀값이 최근 5년 평균 19만3000원(80㎏당)에서 17만2000원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연구원의 분석은 본회의 통과 법안이 아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던 수정 전 법안을 토대로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에선 쌀 의무 매입 기준이 완화된 만큼 분석 수치를 재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野 “재의 요구 접수되는 대로 재투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쌀값 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4.3. 뉴스1
이날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민주당 쌀값정상화태스크포스(TF) 팀장 신정훈 의원은 윤 대통령의 ‘쌀 강제 매수법’이란 표현을 문제 삼으며 “사전 생산 조정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사후적 시장 격리 상황은 극히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한덕수 국무총리는 “강제적으로 남는 쌀을 수매하는 한 농민은 자체적으로 (생산을) 조정해야 할 인센티브가 없다”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국회로 대통령의 재의 요구가 접수되는 대로 재투표에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박 원내대표는 “재표결에 임할 것”이라며 “이 과정을 통해 대통령의 독선적인 통치 행위뿐 아니라 여당이 얼마나 ‘용산 출장소’로 전락했는지를 국민, 농민과 함께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재의 요구를 한 법안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일반 법안(재적 의원 과반 출석, 출석 의원 과반 찬성)보다 본회의 통과 요건이 강화된다. 국회의원 전원이 출석할 경우 200석 이상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국민의힘(115석)이 반대하는 한 법안이 통과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재투표의 목적은 법안 통과라기보다는 이 과정을 통해 정부여당의 무도함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법안이 폐기될 경우 대체 입법할 가능성도 검토 중이지만, 당분간은 여론 상황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세종=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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