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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이해찬과 조국의 기만적인 ‘강제징용’ 아는 체

입력 | 2023-04-05 03:00:00

노무현 정부 민관공동위, 청구권 협정에
강제징용 포함돼 개인청구권 소멸됐다고 봐
청구권이 보상이냐 배상이냐 논란도 무의미
개인청구권 논리 실패 시작과 끝은 문재인



송평인 논설위원


조국 씨가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할 때 배상과 보상의 차이를 거론하며 대법원의 일본 강제징용 판결을 옹호한 적이 있다. 배상은 불법행위에서 발생한 손해를, 보상은 적법행위에서 발생한 손실을 복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법학개론 수준의 개념 구별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이해할 수 없다.

청구권 협정은 한일병합의 불법성에 대한 결론을 먼저 내린 뒤 맺어야 하는 협정이지만 그래서는 해결이 요원하니 선결 문제는 덮어두고 일단 돈 문제의 해결을 모색한 것이다. 일본은 한일병합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아 보상이라 주장했고 한국은 한일병합의 불법성이 명확하기 때문에 배상이라 주장했다.

내막을 잘 모르면 일본은 보상이라고 주장했으므로 배상 문제는 남아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양국이 원한 것은 보상으로 부르든 배상으로 부르든 실질적인 금전 문제의 해결이었다. 한국은 청구권 협정 전후로는 배상임을 고집하다가 근래로 올수록 보상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조 씨처럼 보상과 배상의 구별을 엄밀히 할 경우 보상이란 용어의 사용은 한일병합은 합법이었다고 인정하는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청구권 협정에 관한 한 보상과 배상은 그 차이에 큰 의미를 부여할 게 못 된다.

노무현 정부에서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를 만들어 청구권 협정에 무엇이 포함됐는지 검토했다. 그 결과 △위안부 등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 문제는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또 일본의 무상원조 3억 달러에 포함된 것으로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을 명시했다.

1961년 12월 15일 제6차 한일회담 예비회담에서 강제동원에 대한 피해보상으로 생존자 1인당 200달러, 사망자 1인당 1650달러, 부상자 1인당 2000달러를 기준으로 3억6400만 달러를 산정했다. 이를 포함해 8개 항목에 대한 보상금으로 모두 12억2000만 달러를 일본에 요구했다. 일본은 일일이 보상액을 증명하는 게 곤란하다는 이유로 한일 간의 경제협력 금액을 올리는 대신 청구권을 포기하도록 요구했다.

민관공동위의 민간 측 위원장은 양삼승 변호사가, 정부 측 위원장은 당시 이해찬 총리가 맡았다. 이 전 총리가 최근 다시 등장해 “민관공동위는 개인 청구권마저 소멸된 것으로 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민관공동위 백서를 보면 2005년 4월 27일 제2차 민관공동위 회의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이 ‘국가 간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을 어떤 법리로 소멸시킬 수 있는지 법리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결론이 아니라 문 수석이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는 내용이다. 결론이 어땠는지는 양 변호사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회의에서 청구권 협정 당시 강제동원된 사람들의 사적 청구권까지 해결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문 수석의 주장은 하나의 의견으로 기록된 것이다.

박정희 정부는 1977년 강제징용 사망자에게 1인당 30만 원씩 모두 25억6560만 원을 지급했다. 노무현 정부는 민관공동위가 백서를 낸 이후 추가로 돈을 지급하면서 “1977년 시행한 보상으로 인해 정부의 보상 의무는 없어졌지만 보상이 불충분해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위로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이 전 총리는 위로금이기 때문에 대위 변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말장난이다. 위로금은 대위 변제가 완료됐다는 전제에서 지급된 것이다. 다시 말해 강제동원된 사람들의 사적 청구권까지 해결됐다는 전제에서 지급된 것이다.

‘제3자 변제’는 노무현 정부를 포함해 역대 정부의 해석과 다른 대법원 판결 때문에 나온 고육책이다. 대법원 판결의 이행을 강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건을 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을 등에 업고도 ICJ로 가져가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바로 그 자신이 과거 강제징용 피해자 변호인으로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주장해온 사람이기에 그것은 모순이었다. 결국 그쪽 문은 닫혔음이 드러났다. 이제 다른 대통령이 다른 쪽 문을 열게 해줘야 한다. 비판할 건 비판하되 닫힌 문쪽의 경로로 다시 돌아가는 비판이어서는 안 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