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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김지하 “한류 열풍은 恨의 그늘서 피어난 ‘흰’ 신명”

입력 | 2023-04-05 03:00:00

8차례 대담한 홍용희 교수
‘김지하 마지막 대담’ 출간
“평생 생명의 세계에 천착한 시인”



고 김지하 시인(오른쪽)이 홍용희 경희사이버대 교수와 대화하는 모습. 김 시인이 생전 홍 교수와 8차례 대담한 내용을 담은 ‘김지하 마지막 대담’이 최근 출간됐다. 홍용희 교수 제공


“한류 미학의 핵심은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이 컴컴한 질병과 죽음의 시대가 요구하는 치유의 예술, 치유의 약손입니다. 대혼돈 속에서 신음하는 인격-비인격, 생명-무생명 일체를 다 같이 거룩한 우주공동체로 들어 올리는 모심의 세계문화대혁명, 이를 위한 아시아 네오 르네상스의 미학이 요구된다는 것이지요.”

고 김지하 시인(1941∼2022)이 2016년 5월 홍용희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문학평론가)와의 대담에서 한 말이다.

권위주의 시대 저항과 투쟁의 상징이었으며 생명사상가, 미학이론가로 족적을 남긴 김 시인과의 대담집 ‘김지하 마지막 대담’(도서출판 작가·사진)이 고인의 1주기(다음 달 8일)를 앞두고 최근 출간됐다. 책은 2003∼2017년 홍 교수와 고인이 8차례 벌인 대담 내용을 담았다. 김 시인은 대담에서 자신이 정립한 생명사상과 미학이론을 바탕으로 촛불시위, 한중일 관계 등 다양한 분야의 사안에 대한 의견을 냈다.

김 시인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의 응원, 2000년대 초 한국 드라마의 세계적 유행 등을 민족적 미학의 원형인 ‘흰 그늘’로 해석했다. ‘흰 그늘’은 굴곡진 삶에서 한(恨)을 인내하며 생겨나는 깊은 ‘그늘’과 그 속에서 ‘흰’ 빛, 즉 신명이 피어난다는 원리다. 김 시인의 미학이론의 핵심이기도 하다. “한을 함부로 흩어버리면 안 돼. 이를 악물고 견디고 참아야 해. 그러면서 삭혀야 해. 삭히고, 발효. 김치나 식혜처럼. 절에서 참선하는 중처럼. … ‘흰’ 빛이라는 것 자체가 불, 빛, 광명, 신명, 신바람으로서 아우라입니다. 그래서 그늘에 아우라가 플러스된 거예요.”

김 시인은 시를 생명 자체로 여겼다. “근본적인 시학 자체가 생명의 진행, 시간의 움직임, 변화 이런 것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지. 그걸 떠나면 시는 아무 가치가 없어. … 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 숨겨진 것이 겉으로 드러나고 가시화되어 지각되는 것. 그게 진화고 생명이고 물질이지.”

홍 교수는 3일 전화 통화에서 “김지하 선생은 어떻게 하면 생명의 세계가 구현될 수 있는지에 가장 관심을 뒀다”며 “타는 목마름으로 생명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1995년 김 시인을 처음 만나 20년 넘게 교분을 나누는 한편 그의 사상을 연구해 왔다. 대담집 출간 계기에 대해 “2016년쯤 김 시인의 사상에 젊은 세대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그간의 대담 내용을 정리하기로 했다”며 “팬데믹 기간 만남이 차단된 데다 지난해 선생이 운명하면서 2017년 대담이 마지막이 됐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김 시인의 사상이 위기에 직면한 현대 사회에 빛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시인은 근대문명이 가져온 생명 가치 상실, 기후위기 등을 고민하며 대안을 찾아 나갔습니다.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김 시인의 사상이 출구를 제시해줄 겁니다.”(홍 교수)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