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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납치살인, 윗선이 사주했나… 4000만원 착수금 여부 수사

입력 | 2023-04-05 03:00:00

풀리지 않는 3대 의문점
① 강남 납치살인, 윗선이 사주했나
② 피해자 도움받았던 주범, 왜 범행
③ 납치목적, 코인인가 원한인가




강남 주택가에서 40대 여성을 납치해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이모 씨가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모, 황모, 연모 씨.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발생한 40대 여성 납치 살인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붙잡힌 일당의 윗선을 규명하기 위해 계좌추적과 압수수색을 전방위적으로 확대하고 나섰다. 구속된 실행범들이 “주범 이모 씨(35)로부터 ‘윗선이 있다’고 들었다”고 진술한 것을 토대로 수사에 속도를 내는 것. 하지만 윗선으로 지목된 이들과 이 씨의 관계, 이 씨가 범행을 주도한 이유, 납치 목적 등 여전히 명쾌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 경찰은 해당 의혹의 진상을 밝힐 물증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 주범에게 범행 사주한 윗선 있었나

경찰은 납치·살해를 실행했다고 인정한 공범 황모 씨(36)와 연모 씨(30)가 모두 이 씨의 윗선을 언급한 사실에 주목한다. 특히 황 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 씨가 윗선에서 4000만 원을 받았다고 들었다”며 구체적 진술을 했다.

경찰은 피해자와 이 씨가 모두 알고 지냈던 가상화폐 업계 관계자 유모 씨 부부를 윗선으로 의심하고 있다. 또 착수금이 이들 부부로부터 이 씨에게 건너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유 씨 부부를 출국금지하고 계좌를 압수수색하며 금전거래 내역을 조사 중이다. 하지만 이 씨 측 변호인은 이날 “이 씨가 착수금을 받았다는 건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유 씨 부부는 가상화폐 투자 업계에서 ‘큰손’으로 통했다고 한다. 2019년 한 중국 언론은 유 씨 부부가 ‘한국 기업 대표단’으로 무역전시센터에 방문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다만 한 가상화폐 업계 관계자는 “유 씨 부부 이름을 들어본 적 없다. 큰돈을 굴렸을진 몰라도 가상화폐 업계에 영향을 미친 개발 또는 발행 전문가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 이 씨는 왜 범행을 주도했나
주범으로 지목된 이 씨의 범행 동기 역시 명확하지 않다. 경찰은 유 씨 부부와 이 씨, 피해자 A 씨가 가상화폐 P코인을 연결고리로 인연을 맺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등에 따르면 P코인 투자 홍보를 맡았던 A 씨는 유 씨 부부에 대해 “대단한 분들”이라며 P코인 발행사 대표에게 이들을 소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2021년 P코인이 6개월 만에 1만 원에서 17원까지 폭락하면서 A 씨와 유 씨 부부의 사이가 틀어졌다. A 씨는 유 씨 부부가 시세를 조종해 가격이 폭락했다고 의심해 다른 투자자들과 서울의 한 호텔에 투숙하던 유 씨의 아내 황 씨를 찾아갔다. P코인에 투자했다가 8000만 원의 손해를 입었던 이 씨도 이때 A 씨를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씨와 A 씨는 유 씨의 아내 황 씨로부터 약 1억9000만 원 상당의 코인을 갈취해 공동공갈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이후 투자 실패로 어려움을 겪던 이 씨는 A 씨에게 도움을 요청해 A 씨 부부가 운영하는 가상화폐 채굴 회사에 채용됐고 급여 명목으로 약 2000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공동공갈 사건 이후 이 씨는 “오해가 있었다”며 유 씨의 아내 황 씨와 친분을 맺고 지난해 가을 무렵까지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또 2021년 9월 A 씨 부부 회사를 그만둔 후 유 씨 부부 소개로 서울 서초구의 한 법률사무소에 취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때 동업까지 했던 유 씨의 아내 황 씨와 A 씨는 서로를 비난하며 맞소송을 낼 만큼 관계가 악화됐다고 한다.

경찰은 유 씨 부부와 이 씨, A 씨 부부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4일 경기 광주시의 이 씨 부모 자택도 압수수색했다. 하지만 이 씨는 여전히 범행 가담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 재산 노렸나, 살해가 목적이었나
공범 황 씨와 연 씨는 경찰 조사에서 A 씨의 가상화폐 자산을 노리고 범행에 가담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가상화폐 탈취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실행범들은 A 씨를 납치한 뒤 눈을 가리고 마취제 등을 수차례 사용하며 30분 이상 가상화폐 계좌 및 비밀번호를 알려 달라고 협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과정에서 A 씨가 정신을 잃자 이 씨에게 상황을 알렸는데 이 씨가 “돈이 없는 것 같으니 묻으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공범 황 씨와 연 씨가 30일 오전 3시경 충북 청주시 대청댐 인근에 도착한 후 매장할 때 A 씨가 마취 상태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또 이 씨의 아내가 일하는 성형외과를 압수수색하며 범행 도구로 사용된 주사기 등의 출처를 확인하고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송유근 기자 big@donga.com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