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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산단 조성, 속도가 관건”… ‘60일 타임아웃’ 인허가 특례

입력 | 2023-04-05 03:00:00

[첨단 산단이 산업지도 바꾼다] 〈2〉 첨단산업 지원 팔걷은 정부
도로 등 인프라 조성때 ‘예타’ 면제… 입주기업 세액공제 등 전방위 지원
6월 특화단지 지정 앞두고 유치경쟁
“기업 신속 투자 정부가 판 깔아줘야” “해외 소부장 기업도 유치 필요” 지적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공장. 동아일보DB

SK하이닉스는 2019년 2월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일대에 120조 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세우는 계획을 발표했다. 공장 면적만 415만 ㎡에 이르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순조롭게 보이던 건설 과정은 공업용수 확보 문제로 난관에 부닥쳤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물만 하루 26만5000t에 이를 것으로 보고, 남한강 인근의 공업용수 시설 인허가를 경기 여주시에 신청했다. 하지만 여주시는 주민 반대를 이유로 불허했다. 양측이 별도 협의체를 만들고 SK하이닉스가 상생 방안까지 내놓았지만 진전은 없었다. 결국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와 국민의힘이 중재에 나서 당초 계획보다 1년 6개월이 지난 그해 11월에야 허가가 났다.

이런 상황에선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기 쉽지 않다. 더구나 세계 주요국들은 미중 갈등을 계기로 보조금과 투자세액공제 등을 통해 첨단산업 유치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에 한국 정부도 인허가 특례 등 혜택을 집중시킨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조성에 나섰다. 독일 반도체 산업단지 ‘실리콘 작소니’, 미국 바이오테크 클러스터 등을 능가하는 첨단특화단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 인허가 특례, 인프라 등 전방위 지원

지난해 1월 국회는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앞서 2019년 7월 일본 정부가 불화수소 등 반도체 공정에 필수로 들어가는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시행하면서 불거진 반도체 공급망 위기론이 입법에 영향을 끼쳤다. 정부가 2021년 5월 ‘K반도체 전략’을 수립한 데 이어 8개월의 국회 논의 끝에 특별법이 제정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특별법 제정까지 이례적으로 여야 이견 없이 일사천리로 통과됐다”며 “첨단산업 공급망 구축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했던 결과”라고 말했다.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은 첨단산업 분야의 인허가 특례(간소화), 인프라 지원, 인력 양성, 기술 보호, 세액공제 등을 전방위로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경제안보를 확보하고 첨단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첨단전략기술’을 지정하도록 돼 있다. 현재 특별법에 규정된 첨단전략기술은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3개 산업의 15개 세부 기술이다.

기업과 지방자치단체들이 특별법에서 가장 주목하는 것은 첨단특화단지다. 특화단지 입주 기업에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정부의 인허가 특례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1월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을 개정해 ‘인허가 타임아웃제’를 전격 도입했다. 이에 따라 기업이 지자체에 용수, 전력, 입지 등에 대한 인허가를 요구하면 해당 지자체는 최대 60일 이내에 승인 혹은 불허를 결정해야 한다. 만약 60일이 지나 아무런 조치나 회신이 없으면 인허가가 난 것으로 간주한다. 이 밖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전력공사 등이 추진하는 도로, 용수, 폐수처리, 전력 등의 인프라 조성 과정에서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될 수 있다. 첨단특화단지 내 용적률은 기존 350%에서 최대 490%로 완화되고, 연구개발(R&D) 예산에서 우선권이 보장된다.

정부는 전문위원회 검토, 국무총리 주재 첨단전략산업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분야 첨단특화단지를 올 6월 중 지정할 계획이다. 첨단특화단지 수는 아직 미정이지만 업계에선 반도체의 경우 최소 2곳 이상이 지정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지자체별로 신규 조성하거나, 기존에 보유한 산업단지를 첨단특화단지로 격상시킬 수 있다. 현재 반도체 첨단특화단지 지정 신청에만 10곳이 넘는 지자체가 몰렸다. 첨단전략산업위원회에는 국무총리, 관계부처 장관 등 정부 위원 12명,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민간 위원 8명이 참여한다.

첨단특화단지 지정을 받으려면 첨단산업을 영위하는 대기업이 들어서 기술 개발, 생산 등의 산업 활동을 하고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특화단지처럼 제품을 사들일 대기업이 함께 있는 구조가 첨단특화단지 지정에 유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신속한 투자 이뤄지도록 판 깔아줘”

게티이미지

상당수 기업이 첨단특화단지에 주목하는 건 까다로운 인허가로 인해 투자 시기를 번번이 놓치는 일이 그동안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2014년 10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 시설을 경기 평택시에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전력 공급 인허가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한전과 충남 당진시가 대법원 소송까지 간 끝에 평택 반도체 생산 시설에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소를 지을 수 있게 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첨단산업은 이제 속도전이 됐다. 특화단지는 기업이 경쟁사보다 더 신속히 투자를 집행할 수 있도록 정부가 판을 깔아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첨단특화단지가 성공하기 위해선 한국이 취약한 소부장 부문이 보강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반도체 핵심 장비 기술력을 가진 네덜란드나 소재에 강점이 있는 일본 기업들이 첨단특화단지에 입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첨단산업을 이끌어갈 인재 양성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핵심 부문으로 꼽힌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첨단특화단지의 최종 목적은 첨단산업 공급망 안정화”라며 “소부장부터 최종재가 나올 때까지 모든 과정이 안정적으로 구축될 수 있도록 첨단특화단지 지원이 패키지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