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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 표정의 트럼프, “무죄” “네” “그렇다”…50분간 9개 단어로만 대답

입력 | 2023-04-05 17:12:00


4일(현지 시간) 오후 1시 40분경, 미국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 앞에 진을 친 취재진과 친(親)트럼프, 반(反)트럼프 시위대 등 수백 명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로 향했다. 역대 미 대통령 중 첫 형사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탄 차량 행렬을 트럼프타워에서부터 상공에서 쫓던 취재 헬기들이 나타난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렇게 법원에 도착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하룻밤을 묵은 트럼프타워를 나올 때 지지자들에게 주먹을 들어 보이며 여유를 보였지만 법원에 들어서자 표정이 굳어졌다. 법원으로 향하는 차에서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초현실적인 기분”이라고 올렸다.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그는 머그샷(범죄인 식별 사진) 촬영을 하지 않았고 수갑도 차지 않았다. 지문을 찍은 뒤 법정으로 이동한 그는 미 대통령 사상 처음으로 피고인석에 앉았다.


● 트럼프 판사 “SNS 선동금지” 명령 

후안 머천 판사 주재로 약 50분간 진행된 기소 인부 절차 심리에서 검찰 측은 34개 중범죄 혐의를 공개했다. 미 언론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굳은 표정으로 기소 내용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날 법원 측이 공개한 법정 사진 속 트럼프 전 대통령 얼굴도 경직돼 있었다. 미 NBC 방송은 “미국 역사책에 실릴 사진”이라고 평가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혐의 사실에 대해서는 “무죄(Not guilty)”라고 했고, 머천 판사가 피고인 권리를 읽어 주자 “네,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방해 행위를 하면 재판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느냐’는 질문에 “그렇다(I do)”고 답하는 등 심리 내내 9개 단어만 말했다. 머천 판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함구령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소셜미디어로 대중의 폭력행위를 선동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법원을 나온 뒤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으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소셜미디어에 “놀랄 게 전혀 없었다. 법을 아는 사람이면 전혀 기소거리가 안 된다(No case)고 할 것”이라고 올렸다. 이어 “나는 합법적으로 (입막음에) 13만 달러를 썼지만 브래그(지검장)는 뉴욕경찰 총동원 예산 2억 달러를 썼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 트럼프 “선거 개입” VS 브래그 “중대 범죄”

이날 오후 8시 30분경 마러라고 자택으로 들어설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그는 지지자 수백 명 앞에서 “내가 저지른 유일한 범죄는 미국을 파괴하려는 이들로부터 용감하게 조국을 지킨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들(민주당)은 투표로 이기기 어렵다고 보고 법을 이용하려 한다. 미국은 지금 엉망”이라며 이번 기소를 ‘선거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자신을 기소한 앨빈 브래그 맨해튼 지검장에 대해 뉴욕 대배심 관련 정보를 언론에 유출했다며 “범죄자”라고 지칭했고, “나를 증오하는 판사의 딸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밑에서 일한다”고 머천 판사를 비난하기도 했다. CNN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익명의 측근을 인용해 “트럼프가 힘든 하루를 보낸 뒤 격앙돼 있다”고 전했다.

브래그 지검장도 뉴욕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제 중심지 뉴욕은 문서 명확성이 중요하며 맨해튼 지검이 화이트컬러 범죄에 엄격한 이유”라며 “(트럼프뿐만 아니라 불법 행위를 감추려는 문서 조작은) 누구든지 저지르면 중범죄”라고 말했다.

이날 형사법원 밖은 트럼프 지지자들과 반트럼프 시위대가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미국의 분열된 단면을 드러냈다. 회사도 빠지고 100마일(약 162km)을 운전해 뉴욕에 왔다는 에드워드 영 씨(63)는 “범죄 수사를 통한 정적(政敵) 제거는 스탈린이나 하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뉴욕 시민 라파에 바단 씨(55)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세금 사기, 선거 개입, 기밀문서 유출 혐의도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