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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로 몰려가는 中 2030… “코로나後 건강, 안정 중시”[글로벌 현장을 가다]

입력 | 2023-04-06 03:00:00

4일 중국 베이징 도심에서 차를 이용해 서쪽으로 1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사찰 탄저스(潭柘寺)의 풍경. 비가 조금씩 내리는 좋지 않은 날씨였지만 20, 30대 젊은이들이 많이 보였다. 코로나19 이후 최근 중국 젊은층 사이에는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사찰 여행’이 유행하고 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봄기운이 완연해진 1일, 중국 베이징과 외곽을 연결하는 징청(京承) 고속도로에는 토요일 오전인데도 자동차들이 몰렸다. 대부분 베이징을 벗어나 봄나들이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보였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12월 7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봉쇄와 격리로 대표되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지했다. 이후 100일(3월 16일)을 훌쩍 넘기면서 점차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여행은 갈 수 있을 때 가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하고 있다. 언제든지 다시 봉쇄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듯 보인다.





이들 가운데 30대 초반 직장인 청페이(程菲) 씨도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코로나19가 대규모로 확산했을 당시 2주 동안 봉쇄된 아파트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다. 1일 만난 청 씨는 “주말을 맞아 베이징에서 차로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사찰인 훙뤄쓰(紅螺寺)를 간다”면서 “시끄럽고 화려한 여행보다는 조용하고 차분한 여행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중국 매체 펑파이는 지난달 24일 “모든 연령대에서 여행이 증가하는 와중에 20, 30대 젊은층 사이에서는 사찰 여행이 유행하고 있다”면서 “코로나19 사태를 겪은 이후 감지된 여러 변화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젊은층 중심으로 여행 확산

‘제로 코로나’ 정책 폐지 이후 중국 서우두 공항에 북적대는 인파.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펑파이에 따르면 2, 3월 중국 사찰 관광객 가운데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생)’와 ‘링링허우(零零後·2000년대생)’가 50%를 차지할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 과거에는 사찰 여행은 50, 60대 장년층, 노년층이 주류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펑파이는 “젊은이들의 불안 심리가 여행에 반영된 결과”라면서 “젊은이들도 심리적 안정과 마음의 평온을 찾기 위한 여행을 더 선호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2월 26일 중국 상하이에 있는 심리상담 기업 ‘노유어셀프(KnowYourself)’는 중국 젊은이들과의 심층면접을 통해 “3년 동안 코로나19를 경험한 중국 젊은이들은 이성과 연애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어들었다”면서 “반면 정서적 안정, 육체적 건강,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노유어셀프와 인터뷰를 진행한 30대 중반 직장인 리슈펑(李秀楓) 씨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에 큰 위협을 받았다”면서 “이제 중국 젊은이들은 자기 계발과 성장, 도전보다는 음식이 충분한지, 약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지 등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중국 매체들의 보도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3일 베이징일보는 “지난해 12월 7일 제로 코로나 정책이 폐지된 이후 감기약 소비가 전년 동기 대비 300% 이상 급증했다”고 전했다.

젊은층에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고 있는 것도 이런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공산당의 강화된 애국주의·민족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주링허우’, ‘링링허우’는 원래 중국공산당의 최대 지지층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상하이 봉쇄를 단행하는 과정에서 당국이 봉쇄 전날까지 “상하이에 봉쇄는 없다”며 시민들을 속였던 것이 신뢰를 바닥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결국 젊은층을 중심으로 지난해 11월 “시진핑(習近平) 퇴진” 구호까지 등장한 백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저축 늘고 폭발적 소비는 없어
저축이 증가하면서 기대했던 폭발적 소비는 나타나지 않는 현상도 코로나19 이후 중국에서 보이는 변화 중 하나다. 디이차이징(第一財經) 등 중국 경제 매체들에 따르면 2020∼2022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기간 중국 가계의 저축률은 2019년보다 2∼4%포인트 높았다. 이에 따라 그동안 축적된 중국 가계의 ‘초과저축’도 4조∼7조4000억 위안(약 752조∼1391조 원)으로 추정됐다. 중국 당국은 이 초과저축분이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직후 ‘보복 소비’ 형태로 폭발해 대규모 소비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 회복이 절실한 중국은 가전제품 구입 시 쿠폰 지급, 자동차 구매 시 세금 감면 등 각종 소비 유인책까지 제시하며 소비를 견인하려 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폭발적 소비는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인들은 팬데믹 기간 중 소득 감소와 부동산 침체 등으로 손상된 가계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 저축을 오히려 더 늘렸다. 불시에 발생할 수 있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사람들의 소비 태도가 더 신중해지고 있다.

이는 중국 젊은이들의 새로운 풍조를 상징하는 ‘탕핑(躺平)’과도 맞아떨어진다. 코로나19가 확산했던 2021년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바닥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탕핑 사조가 유행했다. 과시적 소비, 혹독한 노동시간, 치솟는 주택 가격 등을 모두 거부하면서 소비를 최소화한 채 누워만 있겠다는 뜻이다. 당시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 웨이보 설문조사에서 24만 명 가운데 61%가 ‘탕핑족’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중국 당국은 ‘탕핑’이 공산당 체제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라 보고 금지어로 설정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소비 분위기가 아직 위축되어 있지만 부동산 시장은 조금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당국의 부동산 억제 정책으로 바닥을 친 시장이 조금씩 활기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 회복이 반드시 필요한 중국 당국으로서도 중국 전체 경제에서 2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부동산 시장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여기에 봉쇄와 격리 등을 경험한 중국인들이 ‘좋은 집’에 대한 욕구가 더 높아졌다는 점도 더해졌다. 특히 좋은 공공서비스 능력을 갖춰 코로나19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2일 중국 남부 푸젠성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중국 부동산 시장의 변화’ 포럼에서 한 참석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인 오늘날 중국인들은 집을 점점 더 행복한 삶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게 됐다”면서 “재테크 수단보다는 건강하고 질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집을 더 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선 감시’ 앱, 통제에 쓰일 우려

정치·사회 분야에서도 변화를 맞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국민 14억 명을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확보했다. 코로나19 확산 직후부터 지방별로 만든 건강코드 앱이다. 중국은 코로나19 확진자 동선을 빨리 파악하겠다는 명분으로 모든 국민의 휴대전화에 이 앱을 설치하도록 했다. 국민들의 거의 모든 동선을 감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해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지하면서 지금은 이 앱을 사용하지 않지만 이 같은 중국 당국의 경험은 중국을 기존에 없던 전혀 새로운 형태의 국가로 만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이른바 ‘디지털 레닌주의’를 완벽하게 구축한 국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은 이미 거액을 투자해 톈왕(天網) 시스템도 완성했다. 톈왕은 ‘하늘의 그물’이라는 뜻으로 인공지능 감시카메라 2000만 대를 통해 범죄 용의자 등을 추적하는 시스템이다. 길거리에 있는 폐쇄회로(CC)TV에 찍힌 사람이나 차량 등을 인공지능이 분석해 성별, 연령대, 복장, 차량 종류 등 다양한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표시한다. 1초에 30억 장의 사진을 구분해 처리할 수 있고 정확도가 99.8%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도입 초기만 해도 논란이 많았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확진자나 밀접접촉자를 빨리 걸러 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이 시스템을 확대 보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1월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중국은 코로나19 통제를 앞세워 독재 정치를 아름다운 광고로 바꿨다”면서 “코로나19를 겪은 지난 3년 동안 중국공산당 정치 체제가 미국과 서방의 민주주의 시스템보다 더 우월하다는 주장이 상당히 확산했다”고 우려했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