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프랑스에 사는 유학생이나 교민 중 가장 그리운 우리 음식으로 라면, 순대, 대창을 꼽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 보니 지금은 파리에도 순댓국과 대창을 파는 한식당이 몇 군데 생겼다. 프랑스 정착 초기에 프로방스의 한 작은 정육점에 갔다가 순대와 비슷한 모양의 부댕(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냉큼 집어 든 기억이 난다. 정육점 아저씨 설명대로 흰색의 ‘부댕 블랑’은 끓는 물에 넣어 익혔고 검은색의 ‘부댕 누아르’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소시지처럼 구워 접시에 올렸다. 이 둘은 색깔뿐 아니라 내용물과 맛 또한 다르다.
부댕 블랑은 우유, 계란, 크림, 밀가루 또는 빵가루, 향신료에 가금류나 생선의 흰 살을 70% 넣고 나머지 30%는 지방으로 채운다. 그런 다음 소금, 후추 등의 향신료와 우유를 함께 섞어 돼지 대창에 밀어 넣고 90도로 가열한 물에 20여 분 끓여 이를 트롤리에 매달아 냉동고에 15분간 보관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부댕 누아르는 돼지 창자에 선지만을 넣거나 돼지머리 등의 부속물을 섞어 만들기 때문에 부댕 블랑에 비해 거친 식감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종종 부댕을 주문했는데 우리네 순대가 지역마다 다른 것처럼 부댕도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파리 북부 항구도시인 르아브르 지역 부댕 블랑의 경우 돼지비계에 우유, 달걀, 빵가루 등을 넣어 만드는가 하면 남부의 툴루즈 지역에서는 닭의 흰 살과 돼지비계, 우유, 달걀을 넣은 다음 거위나 오리의 간을 20% 정도 섞어 만들었다. 부댕 누아르 역시 오베르뉴 지역의 것은 돼지의 피에 삶은 돼지머리 고기를 넣어 눅진했고, 중부 앙주 지역의 것은 시금치와 허브 등을 넣어 밸런스가 뛰어났다.
부댕과 생김새가 비슷한 앙두예트의 맛은 상상을 초월한다. ‘속을 채우다’는 뜻의 프랑스 고어 ‘앙두이(andouille)’에서 유래한 이 음식의 역사는 9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톰한 표면을 이가 뚫고 들어가는 순간 코끝 쨍하게 느껴지는 강렬함이 있다. 아마도 프랑스인이 우리의 삭힌 홍어회를 먹을 때의 충격과 비슷하지 않을까.
순대나 부댕 같은 음식이 프랑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 여행을 하다 보면 돼지나 양의 내장에 선지, 양념을 한 쌀을 넣어 만드는 모르시야를 뒷골목 식당에서 만날 수 있고, 이탈리아 피렌체 중앙시장에서 파는 돼지 대창 버거도 죽기 전에 맛봐야 할 음식이라며 여행 가이드북들이 추천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맛보는 서양식 순대나 대창의 맛이라니 왠지 특별할 것 같지 않은가? 다만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그들의 독특한 맛과 향을 받아들일 만한 넓은 마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말이다.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