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국 시대에 유대인들은 차별과 핍박의 대상이었다. 정규 교육은 물론 거주지의 자유도 허락되지 않았다. 대다수의 유대인 예술가들은 활동하기 위해 자신이 유대인임을 숨기거나 부인했다. 하지만 마르크 샤갈은 달랐다.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예술에 접목해 공개적으로 표현했다.
‘흰 십자가형(1938년·사진)’은 샤갈이 프랑스 체류 시기에 그린 것으로, 예수를 유대인 순교자로 그린 첫 작품이다. 화가는 예수의 유대인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속옷은 기도 숄로, 가시관은 하얀 머리띠로 대체했다. 십자가 위에는 예수의 죽음을 애도하는 천사와 성모 대신 유대인 복장을 한 랍비 세 사람과 여성 지도자를 그려 넣었다. 십자가 양쪽에는 유대인 학살의 공포와 비극을 묘사했다. 화면 왼쪽에는 약탈당하고 불에 타는 고향을 뒤로하고 배를 타고 도망치는 난민들이 등장하고, 오른쪽에는 유대교 회당과 율법서가 불길에 휩싸인 장면이 그려져 있다. 맨 아래에는 공포에 질린 아이를 위로하는 엄마가 있다.
샤갈이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독일 나치 정권이 자행한 유대인 학살의 공포가 전 유럽을 휩쓸고 있었다. 예술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수많은 예술 작품이 ‘퇴폐미술’로 규정돼 몰수되거나 불태워졌다. 나치군은 유대인 화가 샤갈의 예술도 퇴폐미술로 낙인찍고 조롱했다. 그렇다고 샤갈은 현실을 절망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예수의 발아래 촛대를 보면, 초 하나는 꺼졌지만 5개는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고난과 역경, 죽음마저 이겨낸 예수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