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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빵 먹고 싶으면 와서 가져가…눈치보지 말고” [따만사]

입력 | 2023-04-06 12:00:00

곽광규 PB산청점 대표 인터뷰
아동급식카드 소지 학생에 빵 나눔



매장에서 항상 밝은 표정으로 고객을 맞이하는 곽광규 대표.


“얘들아~ 먹고 싶은 빵이 있으면 뭐든 말해줘!”

경남 산청읍에 위치한 파리바게뜨 매장 밖 유리창에는 커다란 현수막 하나가 걸려있다. 이 현수막에는 삼촌이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다정한 말투의 글이 빼곡히 적혔다. 빵이 먹고 싶은 날이면 눈치보지 말고 ‘예쁜 카드’만 보여준 뒤 가져가도 좋다는 내용이다. 현수막 속 글귀를 직접 작성했다는 곽광규 파리바게뜨 산청점 대표(41). 그는 지난달 13일부터 아동급식카드를 소지한 산청군 관내 학생들에게 빵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산청점 매장에서 직접 만난 곽 대표는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막연히 남을 돕겠다는 생각만 가질 뿐 실천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기부’다. 그 역시도 처음에는 실천이 어려웠다고 한다. 곽 대표는 “돈이 많은 사람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가족 건사할 정도만 되면 나눌 수 있더라”며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공감대를 가질 수 있었고, 나이가 들면 더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곽 대표에 따르면 군 관내 아동급식카드 소지 학생은 240여 명. 이 가운데 소비권인 읍내에서는 60여 명이 아동급식카드를 소지하고 있다. 그는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고 했다. 다만 아직까지 많은 학생이 찾아오진 않고 있다고. 이에 산청군청은 곽 대표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나섰다. 군청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관련 소식을 전하기 위해 군에서 직접 문자 메시지를 발송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곽 대표는 “방학이 되면 더 많이 찾아오지 않을까, 여러 명이 왔다갔다하면 아이들도 편하게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여유로운 형편 아니지만…제빵 기술에 받은 것 많다”

고향인 삼천포에서 사회인 밴드로 활동하던 시절. 곽광규 대표 제공


곽 대표는 파리바게뜨에서 베이킹 매니저로 근무한 본사 직원 출신이다. 일을 하며 사랑도 쟁취했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2013년 아내와 함께 회사를 그만뒀다. 곽 대표는 지금의 자리에 매장을 오픈하기 전인 2015년까지 약 2년간 빵을 만들지 못했다. 그는 “제일 좋아하는 일을 못하게 돼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중 고향인 삼천포에 있는 사회인 밴드에서 보컬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온 것. 학창시절에는 성악 전공을 꿈꿨다는 그는 “자선밴드였다. 공연 수익금은 불우이웃을 돕는 데 썼다”고 했다. 곽 대표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통해서도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이를 계기로 곽 대표는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매장 영업을 마치고 남은 빵은 푸드뱅크에 기부하고, 저소득층 아동 생일에는 케이크를 전달하는 ‘드림스타트 생일케이크 지원’ 활동을 하는 등 선행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곽 대표는 “군에서 월초에 대상 아동 명단을 보내주면 해당 날짜에 케이크를 전달한다”며 “매달 다르지만 한 달 평균 10건 정도”라고 했다. 어버이날에는 사회복지기금을 통해 어르신들에게 직접 만든 케이크를 전달한다. 이에 지난해에는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우수기부자로 선정돼 감사패까지 받았다.

사실 그도 여유로운 형편은 아니다. 매장은 매달 세를 내는 임대다. 곽 대표는 “매달 경기가 다르다. 힘에 부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며 “이달에는 윤달이 있어서 케이크가 조금 덜 나가서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곽 대표는 제빵 기술에 되레 받은 것이 많다고 했다. 그는 “제빵 기술을 배우면서 사람이 됐다.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면서 살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빵 기술”이라며 “아내도 만나고 아이들은 빵 만드는 아빠를 자랑스러워 한다. 그래서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제빵사로 살면서 좋은 일 하나는 ‘콕’ 찍어놓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


“선한 생각 끌어주는 아내…두 아들에 좋은 아빠 되고 싶어”

곽 대표는 지난해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우수기부자로 선정돼 감사패를 받았다.


좋은 일도 가족들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했을 터. 특히 기혼자의 경우 배우자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곽 대표는 이에 대해 “아내도 항상 같은 생각”이라며 “나의 이런 (선한) 생각을 끌어주는 게 아내”라고 공을 돌렸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항상 고맙다. 이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해 항상 존중해준다. 반대할 것이라 생각해본 적 없다. 전부터 얘기해왔던 것이고 이전에도 (비슷하게)했던 일이기 때문”이라며 “항상 믿어주니까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10살, 4살 두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한 곽 대표는 최근 첫째 아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아들이 학원에서 아빠의 선행에 대해 듣고 자랑스럽다는 말을 하더라. 뿌듯하고 찡했다. 아들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끔 해줬다는 게 좋았다”고 했다. 주말은 온전히 아이들과 시간을 갖는다는 곽 대표. 평일에는 종일 가게에 있는 것이 아이들에게 미안해 마감 시간을 30분 당겼다는 그는 모범 아빠의 표본이었다. 곽 대표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언제나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은퇴하는 날까지 나눌 것…학생들 상처 안 되길”

곽광규 PB산청점 대표가 직접 쓴 현수막.


곽 대표는 건강하게 은퇴하는 날까지 이같은 활동을 이어가고 싶은 바람을 전했다. 그는 “은퇴라는 게 건강하게 주방에서 빵을 만드는 날까지를 의미한다”며 “주방에서 스스로 걸어나오기 위해 지금도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4월부터 시작한 다이어트로 20㎏을 감량했다. 곽 대표는 “일도 그렇고, 욕심이 좀 많다. 일단 하고 보는 성격”이라고 했다.

물론 그도 돈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곽 대표는 “돈 욕심 다들 있지 않나”라며 “돈 욕심이 없다기 보다는 가치 있는 일, 좋은 일에 쓰고 싶다.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아이들도 잘 크고 있으니까 먹고 살 수 있는 정도면 더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러한 원동력에는 ‘뿌듯함’이 크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곽 대표는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만큼 (빵을) 주고 싶다. 사실 완벽하게 빵이 다 팔리는 날은 거의 없다”며 “빵이 남기 전에 아이들에게 나눠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친구들이 미리 가져간다고 크게 손해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곽 대표는 인터뷰 내내 학생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기부는 도와주고 베푸는 게 아닌 나누는 것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매장에 올 때) 눈치 보지 말고 편한 삼촌이나 형처럼 생각해주면 좋겠다”며 “상처가 안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곽 대표의 이러한 마음은 앞서 언급한 현수막 글귀에서도 느낄 수 있다.

“얘들아 가끔 빵이 먹고 싶을 때도 있겠지? 여기 (오후) 9시 30분까지 영업하니까 그전까지만 와줘. 어때? 어렵지 않지? 언제나 너희들의 꿈을 응원할게. 밝고 건강한 사람으로, 또 그런 어른으로 자랐으면 좋겠어.”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조혜선 동아닷컴 기자 hs87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