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세계적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71·사진)는 한국과 인연이 깊습니다. 지금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유명한 황동혁 감독이 2017년 만든 영화 ‘남한산성’에서 음악감독을 맡은 바 있습니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았고, 2019년에는 국내 애니메이션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의 음악도 맡은 적이 있습니다. 2000년 이후 여러 차례 이루어진 내한공연으로 한국에도 팬이 꽤 있는 편입니다. 그런 그가 지난달 28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열네 살에 작곡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일설에 따르면 중학교 때 우연히 접한 포스트모던 음악에 강한 충격을 받았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당시 일본과 유럽을 휩쓸고 있던 사회주의 학생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는 훗날 두고두고 사카모토의 삶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사카모토는 1971년 도쿄예술대 작곡과에 들어가면서 주변의 여러 아티스트들과 폭넓게 교류합니다. 1978년 앨범 ‘사우전드 나이브스’로 데뷔했고, 같은 해 일렉트로닉 팝 장르의 선구자 격인 3인조 그룹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를 결성해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립니다. 그래 놓고도 막상 스스로는 “팝음악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고 했다는 걸 보면 천재의 겸손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편으로 그는 사회운동가이자 실천가였습니다. 반핵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환경과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습니다. 지뢰 제거 활동을 위한 자선곡을 발표하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자 피해 지역을 찾아 음악회를 열어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예술을 하려면 평화가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던 사카모토는 2015년 시위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당시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추진하던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2014년과 2020년에 이은 두 번의 암 발병과 투병 생활 중에도 사카모토는 할 수 있는 한 음악 활동을 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암이 막바지에 이른 지난해 12월까지 온라인 콘서트를 통해 관객들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의 일생은 ‘마지막까지 음악과 함께한 삶’으로 기억될 겁니다.
이의진 누원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