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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채권시장 블랙홀 된 한전債, 피해는 돈 급한 기업들 몫

입력 | 2023-04-07 00:00:00


한국전력이 올 들어 벌써 8조 원이 넘는 회사채를 발행했다. 천문학적 적자가 계속되는 가운데 당정이 2분기 전기요금 인상까지 미루면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전채를 찍어 버티고 있는 것이다. 미국·유럽발 은행 위기로 금융시장 불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초우량 채권인 한전채가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전채 발행 잔액은 3월 말 현재 68조 원으로 1년 전보다 무려 72% 급증했다. 1분기 기준 발행액은 8조 원을 넘어섰다. 원가의 70%도 안 되는 전기요금 탓에 적자가 폭증하자 부족한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전채 발행을 늘린 결과다. 최근 당정이 전기료 인상을 보류하면서 한전채 발행 규모는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쏟아지는 한전채에 금융시장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정부가 보증하는 초우량 등급의 한전채로 투자자가 몰리면서 비우량 기업은 이미 자금 조달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대기업 계열사조차 줄줄이 회사채 완판에 실패해 만기가 짧은 기업어음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반면 이달 초 한전채 입찰에는 목표액의 갑절이 넘는 조 단위 자금이 쏠렸다. 대규모 한전채 발행이 지속될 경우 지난해 하반기처럼 우량 기업마저 회사채 발행이 막혀 기업들의 돈줄이 마르는 ‘돈맥경화’가 재연될 우려가 높다.

한전채발(發) 자금 경색을 막으려면 전기요금 정상화와 한전 구조조정 등을 통해 한전의 적자를 줄이는 게 시급하다. 2분기 전기요금 인상이 유보되자 증권가는 올해 한전의 적자 전망치를 8조 원대에서 12조 원대로 높였다. 설상가상 OPEC+의 깜짝 감산으로 국제유가도 다시 뛰고 있다. 이런데도 당정은 어제 전기·가스요금 간담회를 열어 공기업 구조조정만 강조했을 뿐 요금 조정 결정을 구체화하지 않았다.

전기료 정상화가 늦어질수록 한전채발 자본시장 교란이 고착화되고 한전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여름, 겨울철에 비해 전기 사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2분기에 전기료 현실화 등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아울러 가계, 기업 등 모든 분야가 에너지 절약 체질을 갖출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