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의학 뉴스페이스 시대 열려
스위스와 이스라엘이 함께 설립한 우주 스타트업인 ‘스페이스파마’가 개발한 미니 우주실험실. 지난달 14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미국 스페이스X의 우주선 ‘크루드래건’에 실려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향했다(위 사진). 미국 바이오 스타트업 ‘마이크로퀸’이 개발한 치료 약물이 유방암 세포를 사멸시키는 과정을 관찰했다. 스페이스파마·마이크로퀸 제공
지난해 11월 미국 바이오 스타트업 ‘마이크로퀸’은 단백질 ‘TMBIM’을 겨냥한 난소암과 유방암 치료 신규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로퀸은 후보 약물을 암 세포에 적용해 96시간 만에 암세포를 100% 없애는 결과를 얻었다. 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 실험에서도 종양 부피가 4일 만에 91% 감소했다.
마이크로퀸의 연구는 세포 내부 환경 조절 단백질 TMBIM을 암 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스위치’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계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이 연구 결과가 우주 공간에서 얻어낸 성과라는 점이 학계를 놀라게 했다. 우주가 의학은 물론 인류의 미래를 바꿀 획기적 발견을 연구하는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 우주공간 미세중력 환경, 의학 연구에 용이
마이크로퀸의 실험은 지구 상공 약 350km의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이뤄졌다. 지구에서 실험하는 것과 비교해 결과물 도출에 시간을 약 8년 앞당겼다는 게 마이크로퀸의 분석이다.
지구에서는 중력에 따른 밀도 차이로 불균일한 결정이 생긴다. 반면 중력이 ‘0’에 가까운 ‘미세중력’ 환경의 우주 공간에서는 고른 결정을 얻을 수 있다. 단백질 분석 전문가인 이영호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미세중력 환경을 활용할 수 있는 우주가 신약 개발에 유리한 곳으로 평가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마이크로퀸도 미세중력 환경을 활용해 ISS에서 TMBIM를 결정화하고 3D 구조를 분석했다.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TMBIM을 표적으로 하는 후보 약물들을 발굴했다. 암 외에도 퇴행성 뇌질환 파킨슨병을 치료하거나 인플루엔자(독감)를 완벽히 예방하는 형태의 약물 후보들도 찾아냈다. 스콧 로빈슨 마이크로퀸 최고경영자(CEO)는 “단백질 TMBIM의 신약 관련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우주 환경은 줄기세포 배양에도 유리하다. 줄기세포 배양은 인간의 세포나 조직, 장기를 재생시켜 기능을 회복하도록 하는 재생의학의 근간이다. 하지만 줄기세포 100만 개당 100개가량만 원하는 세포나 장기로 만들 수 있는 기술 수준에 그치고 있다. 과학자들은 균일한 결정을 얻을 수 있는 우주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하려는 시도를 진행 중이다.
● 우주공간서 답 찾으려는 기업들 대거 등장
지난달 14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ISS로 발사된 미국 스페이스X의 우주선 ‘크루드래건’에는 스위스와 이스라엘이 합께 설립한 우주 스타트업 ‘스페이스파마’의 미니 실험장치가 실렸다. 가로, 세로, 높이 각 60cm 정도 크기인 미니 실험장치엔 사람 피부가 실려 항노화 의약품, 뇌 질환 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 예정이다.
독일 제약사 머크는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는 신규 약물 전달 기법을,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는 당뇨병 치료제를 우주에서 개발하는 등 세계 선도 제약사들의 우주의학 연구도 한창이다.
국내에선 보령이 우주 의학 연구에 최근 뛰어들었다. 민간 우주정거장을 짓고 있는 미국 우주기업인 액시엄스페이스와 5월 조인트벤처를 설립하고 우주 의학 연구를 포함한 우주 사업에 뛰어든다는 계획이다. 엔지켐생명과학은 우주 방사선 치료제를, 스페이스린텍은 우주 의학 연구를 통한 뇌 질환 진단과 치료 기술을 개발 중이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