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천마총 발굴 원로 좌담회 “도면 작성-원형 보존 등 첫 시도 천마총은 한국 과학 발굴의 시초”
1973년 7월 3일 경북 경주시 천마총 발굴 현장의 발굴단 모습. 왼쪽부터 남시진 계림문화재연구원장,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 고 박지명 문화재관리국 직원, 고 김정기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실장(단장), 소성옥 당시 조사보조원, 김동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윤근일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천마도(天馬圖)가 나오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장니(障泥·말 안장의 부속구) 두 장이 겹쳐진 채로 출토됐는데, 아래 장을 들춰 보니 선명한 색이 일품이었어요.”
1973년 8월 22일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담당관실에 소속해 있던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80)은 경북 경주시 황남동 155호분 발굴조사 현장에서 국보 ‘천마총(天馬塚) 장니 천마도’가 발굴되던 당시를 어제 일처럼 회고했다. 천마총 발굴 50주년을 맞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6일 경북 경주시 힐튼호텔에서 주최한 특별좌담회 ‘천마총, 그날의 이야기’에 발굴에 참여했던 지 전 관장과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75), 윤근일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76), 남시진 계림문화재연구원장(71), 소성옥 씨(71)가 50년 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발굴 당시 나무껍질로 만든 유물이 부서질까 봐 지 전 관장을 포함한 발굴조사원 6명이 달라붙어 커다란 한지를 대고 상자 위에 옮겼다고 한다. 상자 안에는 솜과 소독된 한지를 겹겹으로 깔았고,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물을 적신 탈지면을 둘렀다. 지 전 관장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천마도는 뒤틀림이나 변색이 없다”며 “우리가 정성으로 최선을 다한 덕인 것 같아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천마총 발굴은 발굴일지를 세분화해 기록한 ‘한국 과학 발굴의 시초’로 여겨진다. 당시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담당관실 소속으로 발굴 조사에 참여한 고 박지명 씨가 발굴 현장을 실측해 도면을 남겼다. 남 원장은 수년 전 작고한 박 씨를 떠올리며 “우리나라 발굴 현장에서 도면을 온전하게 작성한 건 천마총이 처음”이라며 “우리가 이런 기록을 남긴 데엔 박 씨의 공이 컸다”고 했다.
유물 보관 상자에 점토를 깔고, 출토되기 전 모습 그대로 핀셋으로 옮긴 것도 천마총 발굴 현장에서 처음 시도했다. 천마총 발굴조사단 부단장이었던 김동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이날 영상을 통해 “5∼6시간이 걸리더라도 핀셋으로 하나씩, 발견된 모습 그대로 유물 상자에 옮겨 담았다”고 회고했다. 이날 좌담회 사회를 맡은 최 교수는 “우리가 늙는 동안 천마총 발굴은 한국 현대사의 일부가 됐고, 고고학과 보존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경주=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