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K금융, 新글로벌스탠더드로] 국내 금융지주 뚜렷한 대주주 없어 정치권 외풍-낙하산 논란 반복
대부분의 한국 금융지주사는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지배구조 특성상 정권 교체 때마다 정치적 외풍의 직격탄을 맞았다. 새로운 최고경영자(CEO) 후보에 대한 ‘낙하산’ 시비가 반복되고 주요 경영 판단이 금융 당국의 입김에 휘둘리기도 한다. 반면 해외 주요국의 금융사들은 철저한 검증을 통한 후계 양성 시스템으로 지배구조 투명성을 확보해 금융사 CEO들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 초 연임을 포기하고 물러난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은 관치 논란의 대표적 사례다. 라임펀드 관련 중징계를 받은 손 전 회장이 ‘버티기’에 들어가자 당국에선 언론 등을 통해 노골적으로 퇴진을 압박했다. 작년 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례적으로 주요 금융지주사 이사회 의장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면서 금융사 CEO 선임에 관해 당국의 의중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런 논란은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는 금융사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신한·KB국민·우리·하나 등 4대 금융지주는 모두 주주가 분산돼 마땅한 주인이 없고, 금융지주 회장이 사실상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로 이사회를 구성해 ‘셀프 연임’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또 차기 회장 내정 과정이 불과 몇 달 만에 진행되는 점도 선임의 객관성에 대한 의문을 부추겼다.
씨티그룹은 차기 회장 최종 후보군(숏리스트)을 최소 승계 1년 전에 확정한다. 숏리스트에 포함된 후보들에게 다양한 계열사와 보직을 두루 경험하게 하면서 자질을 평가한다. 2020년 씨티그룹 최초의 여성 수장으로 선임된 제인 프레이저 CEO도 선임 1년 전부터 ‘2인자’ 자리에 올라 훈련과 검증을 받아 왔다. 골드만삭스도 이사회에서 2018년 데이비드 솔로몬 CEO를 선임하기 전 2년 동안 그를 라이벌인 하비 슈워츠와 함께 공동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임명해 경쟁시키기도 했다.
월가의 승계 과정에서 이사회는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씨티그룹의 경우 이사회 내 상설기구인 지배구조위원회가 잠재적 CEO 후보군 물색부터 선임까지 모든 과정을 담당한다. 국제결제은행(BIS) 산하 바젤은행감독위원회는 “은행 이사회가 CEO 등의 경영 승계 계획을 마련하고 활발히 참여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윤명진 기자 mjlight@donga.com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