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학원가 마약 쇼크] “학생-학부모, 입시 악영향 우려 피해 신고 안하고 쉬쉬 가능성”
“착하게 생긴 아줌마들이 ‘기억력과 집중력을 올려주는 음료’라고 권했다고 했어요.”
3일 서울 강남구 학원가에서 고교생 6명에게 마약 성분이 담긴 음료를 속여 마시게 한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2인 1조로 움직였던 일당 4명을 직접 만났다는 학생들의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맘카페 등에는 직접 음료를 권유받았거나 권유받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수십 건 올라왔다. 이를 두고 현재까지 밝혀진 고등학생 6명 외에 추가 피해자가 적잖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학생들이 자주 찾는 커뮤니티에도 “길거리 시음 행사에서 나눠 준 음료를 마셨는데, 알고 보니 마약 음료였다”, “음료를 마신 한 명은 먹자마자 어지러움을 호소했고 밤에 잠을 못 잤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동아일보 취재진이 6일 강남구 대치동 일대에서 만난 박모 양(14)도 “(범행 당일) 학원에서 나오다가 길에서 20대 여성들이 ‘이거 먹으면 기억력 좋아진다’고 음료를 권하자 한 언니가 그걸 마시는 걸 봤다”고 했다.
경찰에는 전날까지 접수된 고등학생 6명 외에 추가 피해 사례가 접수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두고 마약 투약을 신고하면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고, 입시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신고를 꺼린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강남구청역 인근 한 학원 원장은 “만에 하나 마약 복용 사실이 기록에 남을 경우 대학 입시에도 불리하게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할 것”이라고 했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입시에 민감한 학생과 학부모의 심리를 악용한 범죄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치동 거리에서 만난 김모 군(18)은 “주변에 마약 성분 음료를 마신 사람이 있는데 민망하다며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걸로 안다”고 밝혔다. 다른 학교에 재학 중인 오모 군(18)은 “부모님 친구가 ‘당신 아들 마약 먹었으니 돈 내놔라’는 협박 전화를 받았는데 흔한 보이스피싱으로 여겼다가 뒤늦게 아들이 마약 음료 마신 걸 알았다. 그런데 경찰에 신고도 안 했고 아들에게도 입단속을 시켰다고 들었다”고 했다.
“25세까지 뇌 성장기… 마약, 청소년에 더 치명적”
“성인보다 대뇌피질손상 더 심해
한번 노출로 중독가능성은 낮아”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범죄라는 점에서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필로폰이나 엑스터시와 같은 마약에 노출될 경우 아직 발달이 진행 중인 청소년이 성인에 비해 피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마약으로 뇌가 손상되면 제대로 발달 과정을 거치지 못해 충동 조절 기능이 떨어질 수 있고, 중독에 빠질 위험성이 커진다. 천 원장은 “건물을 지을 때 마지막에 외장재를 덮어줘야 하는데, 이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바람이 치면 구조물이 무너지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피해 학생들이 한 번 마약 성분에 노출됐다고 해서 바로 중독 증세를 보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봤다.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콜학과 교수는 “필로폰은 가장 중독성이 강한 마약에 속하지만 최소 2, 3회 이상 사용했을 때 중독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에 쓰인 음료 병에는 ‘기억력 상승 집중력 강화 메가ADHD’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고, 유명 제약회사 상호도 표기돼 있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6일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식품 중 집중력 강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개선 효과를 인정받은 제품은 없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식약처는 대한약사회 등 7개 기관과 협력해 이달부터 11월까지 온라인상에서의 의약품·마약류 불법 판매 광고 행위에 대한 집중 점검을 벌인다고 이날 밝혔다.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