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K금융, 新글로벌스탠더드로] 투자전쟁 뒤처진 한국금융
글로벌 투자 전쟁에서는 소외되면서 국내에서만 존재감을 발휘하는 ‘우물 안 개구리’. 글로벌 금융 중심지를 꿈꾸지만 실상은 연기금과 민간 자산운용사, 시중은행 모두 세계 수준에 비해 크게 뒤처진 것이 ‘K금융’의 냉정한 현실이다. 기금운용본부를 전북 전주로 옮긴 국민연금은 900조 원이 넘는 운용 자산에도 불구하고 해외 금융사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최고경영자(CEO)가 바뀔 때마다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는 한국의 은행들은 전체 이익의 대부분을 이자이익에 의존하고 있고, 민간 자산운용사는 단 한 곳도 세계 100위 안에 들지 못했다.
전주 이전 국민연금 ‘우물안 개구리’
인력 年 30명 이탈… 전문성 약화
국내 자본시장 부동산-예금 몰려
삼성자산운용 세계 103위 그쳐
“인천공항에서 택시로 이동해도 고속도로에서 3시간을 허비합니다. 오죽하면 한국까지 와서 국민연금을 안 만나는 자산운용사도 있겠어요.”
한국이 글로벌 ‘투자 전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국민 노후 자산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지리적 한계에 따른 인력 유출과 전문성 부족으로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민간 금융회사들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지 못하고 국내 시장에만 안주하는 모습이다.
● 끝없는 인력 유출…해외에서도 “국민연금 패싱”
그러나 몸집만 클 뿐 운용 성과는 떨어진다. 국민연금의 최근 10년(2013∼2022년) 수익률은 4.7%로 캐나다 CPPI(10%), 노르웨이 GPFG(6.7%), 일본 GPIF(5.7%) 등 주요 연기금에 비해 저조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전·현직들은 2017년 전주로 이전하며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했다고 평가한다. 양질의 투자처를 발굴하려면 시장과 쉼 없이 소통해야 하는데 지리적인 한계로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민연금을 퇴사한 B 씨(42)는 “해외 금융사 사이에서 ‘NPS(국민연금의 영어 약어) 패싱’이란 말이 돌기도 했다”며 “시중 유동성이 풍부한 시기에 국민연금은 더 이상 금융사들의 최우선 고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광우 전 국민연금 이사장은 “전 세계 연기금들이 대체투자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 중인 만큼 운용 조직을 서울로 복귀시켜 입지 매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 민간 운용사들도 존재감 미미
우선 세계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엔 규모가 너무 작다. 글로벌 비영리 연구기관 싱킹 어헤드 인스티튜트가 지난해 발표한 ‘글로벌 500대 자산운용사’에 국내 운용사 9곳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100대 운용사에는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았다. 삼성자산운용이 2021년 말 기준 운용자산 2521억 달러로 103위, 미래에셋자산운용은 108위였다.
국내 자산운용사가 성장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 규모에 비해 자본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투자자들이 해외 투자에 소극적인 데다 투자금 대부분이 부동산이나 예·적금 상품에 몰려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금융사들이 다양한 해외 투자 상품을 내놓지 못하는 탓도 있다.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