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잘 아는 변호사가 딸을 두 번 죽였습니다.” 2015년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박주원 양의 어머니 이기철 씨가 SNS에 올린 글이다. 당시 검경이 이 사건을 수사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가해자들은 기소되지 않았다. 유족에게 남은 방법은 민사소송을 통해 딸의 억울함을 알리는 것뿐이었다. 1심에서 일부 승소한 이 씨는 항소심이 가해자들의 책임을 더 엄중하게 물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변호사가 재판에 잇따라 불출석하는 바람에 이 씨의 희망은 물거품이 됐다.
▷민사소송법에서는 재판에 2차례 불출석한 당사자가 한 달 안에 변론기일 지정을 신청하지 않거나, 기일 지정 이후 재판에 또 불출석하면 소를 취하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 씨 측 변호인 권경애 변호사는 지난해 항소심 3차례 재판에 모두 불출석했다. 그 결과 1심에서 이 씨 측이 패소했던 부분은 원심대로 확정됐고, 이 씨 측이 승소했던 1명마저 패소로 판결이 뒤바뀌었다. 이 씨는 힘겹게 8년간 이어온 재판을 허무하게 끝내야 했다. 권 변호사는 ‘조국 흑서’의 공동 저자로 대중적으로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권 변호사는 ‘날짜를 착각했다’는 취지로 변명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법조인들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민사소송은 법원에서 변론기일 통지서를 보내고 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도 날짜를 알려준다”며 “여간해선 기일을 놓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에 가지 않은 진짜 이유가 궁금하다는 이들이 많지만 권 변호사는 ‘유족에게 9000만 원을 갚겠다’는 각서만 써놓은 채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는 변호사에게 “전문적인 법률 지식과 경험에 기초해 성실하게 의뢰인의 권리를 옹호할 의무”를 요구한다. 대한변협은 권 변호사에 대해 징계를 추진 중이다. 법적 책임이나 징계의 관점에서만 따질 일은 아니다. 이는 법조인으로서 기본 자질의 문제다. 패소 소식을 듣고선 “가슴을 바위로 내려친 것 같았다”던 이 씨의 말을 권 변호사가 마음에 새기길 바란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