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반납만으론 고령운전 문제 해결 요원 산간벽지엔 대중교통 없어 면허유지 절실 사회적 편익 차원에서 조건부면허 고려해야
한상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교수
언젠간 운전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건강한 젊은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손발을 쓸 수 없게 되거나, 인지 능력이 떨어지면 달라진다. 그제야 차가 선사하는 이동의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아프지 않아도 나이가 들어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고, 사고가 날 뻔한 경험도 여러 번 반복하면 언젠가 운전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함을 깨닫는다.
그래서인지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고령자도 많다. 2020년 기준 7만6000여 명이 반납했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초래하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운전자 10만 명당 1.8명으로 가장 낮은 30대 0.5명에 비해 3배 이상으로 높다는 점에서 면허 반납으로 고령 운전자 수가 줄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 감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크게 증가할 고령 운전자 수를 감안하면 지금의 운전면허 반납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2020년 368만 명이던 고령 운전자 수는 2030년 72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 인구 2명 중 1명 이상이 운전면허를 소지하게 된다. 지금처럼 8만 명 정도만 반납하면 그 효과는 미미하다. 그렇다고 반납률이 크게 올라가면 인센티브 예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떨어져 운전면허의 최소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는 이들에게 운전을 자유롭게 허용할 수는 없다. 교통사고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운전이 필요한 상황에 있는 이들을 위해 특정한 조건에 한정해서 운전 기준을 완화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의 운전면허 기준은 모든 종류의 도로를 언제든 운전할 수 있는 상황을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운전할 수 있는 조건에 제한을 둔다면 면허 기준도 바뀔 수 있다.
가령 운전 능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제한속도가 높지 않은 집 근처의 익숙한 도로를 운전하기엔 충분할 수 있다. 밤에는 잘 보이지 않아 운전하기 어렵지만 낮에는 힘들지 않은 이들도 있다. 이런 운전자에게 정식 면허 대신 집 근처 도로 혹은 낮에만 운전을 허용하는 조건부 면허를 도입할 수 있다. 조건부 면허 발급이 타당한지 확인하기 위해 그런 상황에서 운전 능력에 문제가 없는지 평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눈에 띄게 달라진 차량의 안전 기술도 조건으로 포함시킬 수 있다. 최근 출시된 자동차는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을 장착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차는 전방의 물체와 충돌위험이 있을 경우 자동으로 차를 멈추는 기능도 있고 사각지대 위험이나 졸음운전 위험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그만큼 운전자 과실로 인한 사고 위험이 크게 낮아진다. 개인의 운전능력은 떨어지더라도 이런 차만 운전한다는 조건으로 운전면허를 허용할 수 있다. 일본도 자동긴급제동장치를 장착한 차량 혹은 이 장치에 더해 급발진방지장치를 장착한 차량만 한정해서 운전을 허용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면허가 취소됐지만 생계를 위해 꼭 운전이 필요한 운전자를 돕는 방안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가령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경우 음주운전잠금장치를 단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면허를 허용할 수 있다. 벌점이 누적돼 면허가 취소된 사람 중에도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 운행거리나 시간에 제한을 두는 조건부 면허를 발급할 수도 있다.
한상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