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뉴시스
미국 정보기관이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해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의 내부 논의를 감청한 정황이 담긴 기밀문건이 유출됐다.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과 무기 정보, 러시아의 군사작전 첩보 등이 담긴 기밀문건 100여 건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출됐는데, 이 중 최소 2건이 한국 고위당국자들을 감청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외신 보도가 사실일 경우 한미 양국의 신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이들 문건에는 한국 국가안보실이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제공할지 여부를 논의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3월 초 이뤄졌다는 논의에서는 이문희 당시 외교비서관이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의 훼손 가능성을 지적했고,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155mm 포탄 33만 개를 폴란드에 우회 판매하는 방안을 언급했다고 돼 있다. 발언한 이의 실명과 수치까지 상세하다. 통화나 문자 혹은 회의 자체를 감청하지 않고는 얻어내기 어려운 정보들이다.
미국 등 주요국의 정보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국제 정세가 요동치며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안에 적극 협조해온 동맹국들까지 CIA 등이 감청하는 것은 외교 관계를 흔드는 스파이 행위로 비칠 수밖에 없다. 한미 양국은 고위당국자 간 대면회의를 비롯한 각급(級) 공식 협의 채널을 수시로 가동하고 있다. 이를 통하지 않고 뒤에서 몰래 엿들으려는 시도가 지속된다면 상호 불신은 커지게 될 것이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동향을 포함한 민감한 정보를 공유하는 동맹이다.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와 경제안보 움직임 등으로 볼 때 필요한 정보의 양은 더 늘어날 것이다. 굳건한 신뢰가 바탕이 돼야 의미 있는 수준의 정보 공유와 협의가 지속될 수 있다. 미국에 해명을 요구하고, 유출된 문건의 분석을 토대로 감청 경로를 역추적해 정부 보안 체계를 재점검하는 계기로도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