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연이은 헛발질에 정책 희화화 ‘주 69시간’은 대통령실이 혼선 자초 이대론 3개 개혁 미래 암울 철저한 반성이 신뢰 찾는 첫 단추
천광암 논설주간
미국 인디애나대 연구에 따르면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상에 존재해온 25만여 년 동안, 첫아이를 본 아버지의 평균 나이는 30.7세였다고 한다. 만혼(晩婚)이 일상화된 2023년 한국에서는 어떨까.
한국 남성은 대개 20대 초반에 군대에 간다. 제대 후 ‘취업운’이 순탄하면 대졸자의 경우 26세 안팎, 비대졸자의 경우 23세 안팎에 첫 직장에 들어간다. 그런 다음 열심히 저축을 해서 전셋집 한 칸이라도 마련할 여유가 생기는 33, 34세 정도에 결혼을 한다. 첫아이는 30대 중반은 돼야 보게 된다.
설령 입대를 미루고 결혼부터 서두르려 해도 심각한 취업난·주택난이 앞을 막는다. 첫아이를 보는 나이가 ‘호모사피엔스 평균’에 도달하는 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국민의힘 정책위원회에서 나왔다는 ‘30세 전 아이 셋 낳은 아빠 병역 면제’ 아이디어는 이런 점에서 현실성이 전혀 없는 탁상공론이다. 사전에 길 가는 청년 서너 명만 붙잡고 물어봤어도, “왜 애는 여자가 낳는데 혜택은 남자가 보느냐”와 같은 불필요한 분란을 일으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밥상에서 쌀을 밀어내는 ‘주범’을 굳이 찾자면 다이어트가 아니라 고기다. 2012년까지만 하더라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돼지고기 닭고기 소고기 등 육류보다 29.2kg이나 많았다. 하지만 ‘밥보다 고기’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작년을 기점으로 육류가 쌀 소비를 추월했다. 그렇다고 ‘고기 덜 먹기 운동’을 해서 쌀 소비를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쌀 소비를 늘리자는 논의는 좋은 의도에서 시작했을 수 있다. 하지만 심각한 쌀 과잉생산을 유발할 수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양곡관리법에 대한 비판과 대안이라는 맥락에서 나온 이상 희화화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주 69시간’ 논란에서 보여준 갈팡질팡과 정책 난맥상은 더 심각하다. 노동개혁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 중에서도 현 정부가 첫손가락에 꼽는 핵심 과제다. 주 52시간제 개편안은 그중에서도 ‘1호 법안’이다. 준비할 시간도 충분했다. 윤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였고 정부 안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시작된 것도 지난해 6월부터다.
3대 개혁은 비단 중요하다고 해서만 3대 개혁인 것이 아니다. 계층 간, 세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다 보니 해결되지 않은 문제와 모순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켜켜이 쌓여있는 영역이다. 그만큼 어려운 숙제라는 의미다.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해당사자들과의 충분한 사전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대의(大義)만 앞서고 ‘디테일’이 없어서는 추진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반발이나 난관을 돌파해 나갈 수 없다.
국민의힘은 소수 여당이다. 윤석열 정부가 불리한 국회 의석 구조를 극복하고 국정 주도력을 발휘하려면 국민의 지지 외에는 달리 우군이 없다. 그러나 최근 한국갤럽 조사나 엠브레인퍼블릭 등 4개 기관의 공동 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의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나 주 52시간제 개편 모두에 대해 비판 여론이 긍정 여론을 압도한다. 최근 정부 여당이 연이어 쏟아낸 자책골과 정책 참사가 자초한 결과다.
윤 대통령은 최근 이 같은 난맥상을 수습하기 위해 당정 협의를 강화하라고 지시했지만, 당과 정부가 모두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협의 시간을 늘린다고 해서 나아지는 게 있을지 의문이다. 불신의 늪에 빠진 정책 신뢰성을 회복하려면, 우선 정부 여당이 바뀌려 한다는 믿음부터 심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첫 단추가 철저한 자기반성이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