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도 野도 싫다” 중도·청년층
《SBS가 8, 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년 4·10총선에서 ‘국정안정을 위해 여당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이 36.9%, ‘정권견제를 위해 야당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이 49.9%로 나타났다. 정권견제론이 국정안정론에 비해 13.0%포인트 높게 나온 것이다. 특히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도층에서 야당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이 60.8%로, 여당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 28.2%의 두 배 이상에 달했다. 정부 여당에 실망하는 중도층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30.8%, 국민의힘 28.0%였다. ‘지지 정당이 없다’고 응답한 무당층은 34.7%로 3분의 1에 달했다. 특히 20대 이하 청년층의 경우 국민의힘 10.1%, 민주당 24.0%에 그쳤다. 여권에 부정적이거나 비판적 침묵으로 돌아선 중도층이 정권견제론에 힘을 실으면서도, 제1야당인 민주당 지지로 바로 이동하진 않고 있는 것이다(넥스트리서치 조사·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선거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중도층 민심이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약 1년 동안 어떻게 변해왔는지 되짚어 봤다.》
● 53%→24%→31%…요동친 尹 지지도
순항할 듯했던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지난해 8월 초와 9월 말 취임 후 최저점인 24%로 주저앉았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 퇴진을 둘러싼 당내 갈등과 미국 방문 때 벌어진 ‘비속어 발언’ 파문 때다. 강성 지지층은 결집했지만 중도층과 20대의 이반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9월 27∼29일 조사에서 나타난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는 긍정 24%, 부정 65%였는데, 중도층에서는 18%, 73%로 그 격차가 벌어졌다. 20대의 긍정평가는 9%로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다.
이슈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던 국정 지지도는 윤 대통령이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과 건설 노조 등에 강경 대응하면서 반등하기 시작했고, 30% 중반대를 회복했다. 올해 고점인 37%를 기록한 2월 21∼23일 조사에서도 직무수행 긍정평가 이유로 ‘노조 대응’(24%)이 가장 많이 꼽혔다. 특히 중도층과 20대에서 노조에 대한 강경 대응 기조에 대한 긍정평가가 높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진영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중도층은 ‘법과 원칙’에 따른 공정 이슈와 합리성에 민감하다”며 “정부의 원칙적 대응은 중도층이 윤 대통령에게 바라는 ‘공정과 상식’이 반영된 결과로 인식됐고, 대통령 지지율도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3월 이후 윤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아들의 학폭 논란, 주 52시간 근로제 개편안 혼선과 일본 강제징용 해법 논란 등이 겹치면서 중도층과 청년층 지지율이 빠지며 30∼31%까지 하락한 것이다.
● 전대 후 오히려 지지율 하락한 국민의힘
국민의힘은 3·8전당대회 이후 컨벤션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지지율 침체에 빠졌다. 한국갤럽의 4∼6일 정당 지지도 조사 결과는 민주당 33%, 국민의힘 32%로 집계됐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직전 조사보다 1%포인트 떨어졌지만, 민주당은 전주와 같은 지지도를 유지하면서 1, 2위가 뒤바뀌었다. 국민의힘 전대 3주 전인 2월 14∼16일 조사에서 중도층의 선택은 국민의힘 29%, 민주당 23%였지만 이번 조사에선 국민의힘은 23%로, 민주당 34%에 11%포인트 뒤졌다.
장윤진 한국갤럽 차장은 “어느 정당이나 지지율 상승은 중도층으로 지지세의 확장이 뚜렷할 때 나타난다”며 “최근 국민의힘은 그 반대의 경우”라고 했다. 이어 “국민의힘의 친윤 일색 지도부에 대해 보수층은 안도했지만 중도층은 앞으로 혁신이 가능한 정당으로 변모할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20대 이하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22%로 민주당 25%에 뒤진 것도 눈길을 끈다. 특히 지지 정당이 없다는 응답이 51%로 절반을 넘겨 전 연령대에서 무당층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배 소장은 “중도층은 이념적 색채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보수·진보의 고정 지지층과 달리 언제든지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며 “진영 대결이 첨예해질수록 국민의힘으로선 2030세대와 중도층의 마음을 잡지 못하면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도, 총선 승리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권에선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가 보수층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권 초 여당의 지지도는 대통령과 연동되는 경우가 많다. 내년 총선이 ‘정권견제론’ 속에서 치러지느냐, 아니면 ‘국정안정론’ 속에서 치러지느냐는 결국 윤 대통령 지지율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인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서도 중도층의 지지가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여권 관계자는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정부의 원칙적인 대응은 중도층을 포함한 다수 국민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국민이 윤 대통령에게 바라는 개혁 달성의 전제 조건은 대통령을 향한 국민의 지지”라고 말했다.
● 반사이익 얻지 못하는 민주당
대선 이후 좀처럼 반등의 모멘텀을 만들지 못했던 민주당은 최근 국민의힘을 앞선 여론조사 결과에 내심 고무된 분위기다. 3월 21∼23일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는 35%, 국민의힘은 34%로 나타났다. 이어 4월 첫째 주 조사에서도 민주당이 1%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주목되는 건 여당 지지율이 빠지는 만큼 민주당 지지율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중도층이 포함된 무당층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갤럽이 진행한 최근 조사의 경우 무당층은 28%에 달했다. 지난해 6·1지방선거 직후 조사에선 국민의힘 45%, 민주당 32%, 무당층 18% 등이었다. 10개월 새 국민의힘 지지율은 10%포인트 이상 떨어졌지만 민주당 지지율은 별 변동이 없고, 무당층은 10%포인트 늘어났다. ‘친윤’이 득세하고 ‘개딸’ 등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는 거대 양당이 중도층에게 외면받고 있다는 뜻이다.
2020년 4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민주당이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등에서 연이어 패배한 것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밀어붙이기와 ‘검수완박’ 등 입법 폭주로 인한 중도층 이반 현상의 영향이 컸다. 고정 지지층만 붙잡고 반사이익에 기대는 정치는 국정 운영에서도, 선거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 결국 누가 중도층의 신뢰를 다시 얻느냐의 싸움인 것이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