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때 비대면 진료, 높은 환자 만족도 보여 비대면, 대면 진료 조화시켜 장점 극대화 필요 법적 환경 정비해 안정적 제도화 도모해야
이상열 경희디지털헬스센터장·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우리나라에서 비대면 진료 시도는 꽤 오래전인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의사와 의료인 간 ‘비대면 진료’ 제도가 도입됐고, 2006년에는 의사 환자 간 ‘비대면 진료’의 시범 사업이 시행됐다. 다만, 이후 여러 복잡한 사유로 이 제도는 ‘시범 사업’ 이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 감염증의 확산 기간에 의료 접근성 향상을 명분으로 한시적 비대면 진료가 허용됐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의하면 비대면 진료가 처음 허용된 2020년 2월 이후 2023년 1월까지 2만5697개 의료기관에서 총 1379만 명을 대상으로 3661만 건의 비대면 진료가 실시됐다. 당뇨병, 고혈압을 비롯한 만성 질환을 중심으로 시행됐는데, 이런 비대면 진료가 의료 서비스의 질적 향상에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만성질환자의 처방 지속성, 즉 치료 과정 중 약물을 꾸준히 복용하는 정도가 비대면 진료의 허용 이후 증가했다. 전화 상담 처방 진료를 받은 환자 또는 가족을 대상으로 실시한 만족도 조사 역시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심각한 의료 사고는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 보고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다. 개인적으로 비대면 진료의 명분과 원론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당뇨병을 비롯한 만성질환자의 진료를 담당하는 임상 의사로서 이런 복지부의 자료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비대면 진료의 시범 사업 수순에 나서는 모습이다.
비대면 의료 시스템의 안정적 제도화를 위해 다음 몇 가지 요소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선, 비대면 의료를 둘러싼 법적 프레임워크를 검토하고 보완해야 한다. 정부는 규정과 지침을 업데이트해 의료 서비스 이용자가 비대면 의료를 활용해도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계속 경험할 수 있도록 제반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한편으로 비대면 의료 서비스의 한계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불가항력적 사안에 대한 보호 장치를 마련하여 의료진이 안심하고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의료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 역시 충분히 고려한 적용 범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비대면 의료 기반의 상담, 치료 및 후속 조치가 대면 진료에 비해 질적으로 떨어지지 않는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초진 환자의 비대면 의료 적용에 부정적이다.
그리고 비대면 진료와 대면 진료 간의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 비대면 진료는 효율적인 의료 서비스 제공 방식이지만, 대면 진료에 이어지는 중요한 과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비대면 진료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미리 파악하고 적절한 대면 진료를 추천하거나, 비대면 진료를 통해 관리되던 환자를 대면 진료로 이어지도록 하는 의료 서비스 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의료기관 간 원활한 정보 공유와 의료진 사이의 협업 강화가 필요하며, 비대면 진료와 대면 진료의 전환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 플랫폼의 개발과 확산을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비대면 의료의 확대에 있어 환자의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보안은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민감한 환자 정보를 보호하고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보장하기 위해 엄격한 규정, 모범 사례 및 보안 기술이 마련되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의료 분야에서도 큰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이 변화를 전향적으로 활용해 비대면 진료와 대면 진료의 적절한 조화를 찾고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비대면 진료와 대면 진료를 서로 보완하고 통합하는 의료 서비스 체계를 구축한다면, 보다 효율적이고 접근성이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열 경희디지털헬스센터장·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