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대전환, ‘그레이트 시프트’] 〈1〉 본보-경영학회 경영환경 진단 노조 발목잡기 등 내적요인 더 주목… “공급망 등 외부요인보다 큰 걸림돌” 신사업 발굴-과감한 투자 과제 꼽아
‘국내 대기업의 경영 환경 중 가장 어려움이 큰 부문은 무엇입니까.’
전 세계 산업계가 ‘그레이트 시프트(Great Shift·대전환)’를 맞이하고 있는 2023년 현재 국내 경영학자 151명은 이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 가장 많은 응답은 글로벌 경기 침체나 미중 갈등 불확실성, 공급망 불안이 아니었다. 경영학자들은 국내 대기업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불안한 노사관계’(32.5%·복수응답)를 첫손가락에 꼽았다.
동아일보는 1∼3월 한국경영학회와 함께 학회원 15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심층 인터뷰를 통해 한국 대표 그룹들이 마주한 새로운 경영 환경과 현 세대 총수들의 리더십을 진단했다.
● 총수들에게 주문한 키워드는 ‘도전’
‘글로벌 경제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한 대기업들의 과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신시장 및 신사업 발굴’(50.7%·복수응답)과 ‘과감한 투자를 통한 경쟁력 확보’(38.0%)가 1, 2위를 차지했다. ‘핵심 인재 발굴 및 채용’(19.3%)과 ‘과감한 M&A를 통한 기업 체질 개선’(17.3%)도 높은 비율로 집계됐다. 반면 ‘원가 절감 등 수익성 개선’(6.0%)을 조언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위기 상황일수록 공격적인 투자로 미래를 도모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반도체 경기 추락에 타격을 입은 삼성전자는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 원이라는 거금을 차입하면서까지 투자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그간 유지해 온 ‘무차입 경영’이라는 이력도 깼다. LG전자도 시설 투자금을 전년 대비 31% 늘렸다. 김중화 한국외국어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주요 기업을 이끌고 있는 3·4세 총수들은 그룹의 오랜 경험과 축적된 노하우를 통해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한 것 같다. 단기적인 수익을 추구하기보다 좀 더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뒷받침돼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짚었다.
● “대기업 총수들의 사회적 책임 과거보다 커져”
그 이유에 대해 다수 응답자들은 “기업 투명성과 지배구조에 대한 사회적 눈높이가 높아졌다” 등 기업에 대한 사회 전반의 요구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을 지목했다. 대외적으로는 “경쟁이 상대적으로 치열하며 글로벌 환경에 더욱 노출됨에 따라 외적인 변수가 매우 증가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 외 “선대 회장들은 경제 발전이 가속화되던 시대에 성장을 도모할 기회가 많았던 반면, 현재는 새로운 시장 기회를 모색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기술 및 아이디어의 수명 주기가 지속적으로 짧아지고 있다”는 시대상의 변화도 제시됐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부상과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중요성 확대로 총수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은 커지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계열사 내부 MZ 구성원의 성과급 반발에 연봉을 반납하거나 이사회 중심 경영으로 거버넌스 체제 전환에 적극 나서는 것, 타운홀에서 직접 신입사원들의 질문에 응답하는 것도 그레이트 시프트 시대에 접하는 새로운 총수의 모습이다.
외부 환경이 급변하면서 총수들이 대형 수주전을 직접 챙기는 한편 공급망 등 정책적인 이슈에도 적극 대응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취임 후 첫 출장지로 아랍에미리트(UAE)를 찾아 원전·천연가스전 등 미래 시장 확보에 직접 나섰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향방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까지 수차례 미국으로 건너가 ‘경제외교’에 뛰어든 것도 그 일환이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