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탄생의 날(1월 27일)의 의미를 담은 2023년 1월 촬영본. 고려대 자선달력제작회 제공
고려대 청년들이 ‘몸짱’ 모델이 됐다. 이들 뿐이 아니다.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자 부모가 된 67학번, 91학번 졸업생, 나이 지긋한 고려대 교수도 카메라 앞에서 웃통을 벗고 탄탄한 몸을 드러냈다. 이 ‘몸짱’들이 모여 만들어진 ‘고려대 몸짱 자선 달력’. 달력 밑에는 은색으로 적힌 ‘자선달력 수익금은 전액 사회에 환원됩니다’ 문구가 빛나고 있었다. 뒷면에는 빼곡하게 재능을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이 자선 달력이 완성되기까지 모든 과정 속 한 곳, 한 곳마다 고려대 학생들의 손때가 묻어 있다. 마치 한 단계씩 퀘스트를 완수해가는 ‘원정’과도 같았다. 자선 달력은 ‘청년으로서 기부 이상의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 시작하게 된 고려대생들의 특별한 프로젝트였다. 이런 ‘건강한’ 달력을 처음으로 기획한 사람은 화공생명공학과 17학번 학생이자 고려대 총학생회, 자선달력제작회를 이끄는 박성근 총학생회장(27). 본지는 이번에 박 회장을 만나 본격적인 달력 제작기를 들어봤다. 함께 2023년 고려대 자선달력제작회에 모델이자 기획팀원으로 참여한 고려대 체육교육학과 20학번 전세린 학생(23)도 만나 다사다난했던 달력의 탄생 과정을 짚어봤다.
처음으로 제작한 2022년 자선달력. 고려대 자선달력제작회 제공
첫 달력 제작에는 고려대 체육분과 8개 운동 동아리 학생 50명이 모델로 참여했다. 고려대 자선달력제작회 제공
이 중 6~7명의 학생들이 모여 ‘고려대 자선달력제작회’를 만들었다. 아이디어 회의부터 제작진과 모델 모집, 촬영, 홍보자료 제작, 판매와 기부까지 학생들의 힘으로 이뤄졌다.
특히 촬영 단계에서 몸을 만드는 데 고충을 겪었다. 취미였던 운동은 본격적으로 ‘몸짱’이 되기 위한 훈련이 됐다. 학생들은 매일 헬스장에가서 2시간 이상 운동을 했다. 꾸준한 운동은 물론 빡센(?) 식단 관리도 한 몫 했다. 탄수화물, 단백질 등 영양성분을 꼼꼼히 체크해서 음식을 먹었다. 전세린 학생은 “단백질은 닭가슴살 삶은 달걀, 탄수화물로는 잡곡밥과 고구마만 먹었다”고 했다.
고려대 자선달력제작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8월 14일)이 있는 8월에는 의미에 맞게 한복을 입고, 위안부 기억의 터에서 촬영을 했다. 고려대 자선달력제작회 제공
가정의 날(5월 15일)이 있는 5월에는 고려대 졸업생이 등장했다. 체육교육학과 교수도 자원해 모델로 참여했다. 고려대 자선달력제작회 제공
2023년에는 더 본격적으로 힘을 모았다. 사람들의 선한 관심을 모으기 위해 국가 탄생의 날(1월 2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8월 14일) 등 각 열 두가지 월에 맞는 테마도 선정했다. 이번 아이디어 회의를 함께했던 전세린 학생은 “한국의 12가지 가치를 골라야 하고 각 달마다 연관성이 있는 주제로 선정하려다 보니 (고르기가) 힘들었다”며 “한국의 수많은 고유한 가치가 있는데 12가지로 딱 맞추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가정의 날(5월 15일)이 있는 5월에는 고려대 졸업생과 교수도 등장했다. 모델 모집 공고를 보고 직접 연락을 했다고 한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71학번, 생물학과 67학번, 행정학과 88학번 졸업생들이 ‘몸짱’ 모델로 카메라 앞에 섰다.
‘건강한’ 달력을 처음으로 기획한 고려대 화공생명공학과 17학번 학생이자 자선달력제작회장을 맡은 박성근 고려대 총학생회장(27). 이예지 동아닷컴 기자 leeyj@donga.com
국제 장애인의 날(12월 3일)이 있는 12월에는 청각 장애인이 모델이 됐다. 이를 위해 제작회는 국내 최초 장애인 엔터테인먼트인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에 전화를 걸었다. 장애인 모델들도 좋은 뜻을 모였다고 하니 선뜻 긍정적으로 재능 기부를 했다. 촬영에 참여한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소속 모델 박현진 씨는 특별한 이야기도 전했다. 박현진 씨는 “3달 동안 박성근 회장이 달력 촬영을 위해 개인 헬스 트레이닝을 도왔다. 서로 몸 만들기를 함께하며 같이 발전해나갔다”며 “생각했던 것 보다 결과물도 너무 잘 나와서 정말 기뻤다”고 했다. 박 회장은 “개인적인 여건으로 몸을 만들기가 어려우셨는데, 촬영에 함께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어 1대1 코칭을 해드렸다”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예지 동아닷컴 기자 leeyj@donga.com
이예지 동아닷컴 기자 leeyj@donga.com
완성본을 본 주위 반응도 뜨거웠다. “다양한 주제와 모델로 달력이 만들어진 게 신기하다”, “좋은 일에 쓰인다니 참 멋지다”는 주위 반응에 참여 학생들의 그간의 힘듦은 뿌듯함으로 바뀌었다. 한편으로 박 회장은 “부모님은 (달력을 보시고) ‘학업에 잘 집중하고 있는 건 맞지?’라며 우려를 표하기도 하셨다”고 유머를 전하기도 했다.
기부 대상은 매년 달랐다. 2022년에는 결식 아동을 위해, 올해는 보호종료아동을 돕는데 쓰였다. 박 회장은 “매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약자를 찾아 이들에게 관심이 쏠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며 “내년에는 또 다른 어려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힘쓰고 싶다”고 당당하게 포부를 밝혔다.
이 과정은 모두 학생들과 졸업생들의 ‘재능 기부’로 이뤄졌다. 모델, 사진작가는 물론 메이크업 아티스트까지 돈을 받지 않았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어려운 약자를 돕고자 하는 청년들의 마음이 이들을 울렸다. 모델로서 기부에 참여한 전세린 학생은 “한국 가치에 대해 조사하며 알게 된 게 많다”며 “의미있는 장소와 우리나라 기념일을 담아내 기억에 많이 남을 것”이라고 뿌듯함을 밝혔다.
박 회장과 고려대 자선달력제작회는 앞으로도 꾸준히 ‘건강한 몸짱 선행’을 이어갈 예정이다. “기부는 바쁘게 삶을 살아갈 때의 보람”이라고 밝힌 박 회장은 “할 수만 있다면 계속 달력 제작을 이어 나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어 “조금 더 많은 학생들이 모여 오프라인 판매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이예지 동아닷컴 기자 leey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