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승박덕(才勝薄德)’
기성 정치권을 몰아세우며 ‘따박따박’ 할 말을 하는 것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장점이자 매력이다. 하지만 그 자체로 단점이 되기도 한다. 이 전 대표와 같은 정당에 몸담았던 한 유력 정치인은 그에 대해 한마디로 재주는 많지만 인덕이 없다는 의미로 이 같은 평가를 내놓았다고 한다.
● 과도하게 자아가 강한 ‘재승박덕’ 스타일
2016년 11월 당시 새누리당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국회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사퇴를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당시 노원병 당협위원장이었던 이준석 전 대표(가운데). 동아일보DB
이 전 대표도 도발적인 발언을 하다 보니 구설수에 자주 휘말렸다. 국정농단 사태가 논란이 됐던 2016년 11월엔 당시 이정현 대표 사퇴를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또 안철수계 국민의당과 유승민계 바른정당이 합당해 만든 바른미래당에선 2019년 4월 재·보궐선거 성적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손학규 당시 바른미래당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 전 대표가 비공개 회식 자리에서 안철수 의원을 향해 ‘병×’라는 비속어를 써서 논란이 된 일도 있다. 이 전 대표는 “사석에서 한 말이고 이것이 문제 될 발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사과하지 않았다. 안 의원 측의 문제 제기로 바른미래당 윤리위원회는 이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결정을 내렸다. 결국 이 사건으로 계파 간 갈등이 폭발하면서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탈당한 뒤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했다. 이후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 국민의힘으로 통합됐다.
2021년 국민의힘 당 대표로 선출된 뒤에도 친윤 측과 갈등이 깊어졌다. 친윤 측에선 이 전 대표를 의도적으로 소외하거나 그를 깎아내리는 익명 인터뷰를 하는 등 견제구를 날리며 불화를 일으켰다. 이 전 대표도 ‘윤핵관’이라는 단어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여러 차례 충돌했다. 특히 이 전 대표는 자신이 연루된 성 접대 의혹을 수사하는 경찰의 배후에 윤핵관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도 폈다. 국민의힘 대표와 대선 후보 양측이 대선 앞에서 힘을 모아 일치단결해도 모자랄 판에 서로 이전투구를 벌이며 몇 차례 싸웠다 화해하는 꼴불견의 장면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성 접대 의혹에도 휘말렸다. 2013년 7월 11일과 같은 해 8월 15일에 대전 유성구 소재의 모 호텔에서 김성진 당시 아이카이스트 대표이사의 주선으로 성매매 여성에게 두 차례 성 접대를 받았다는 것이다. 가로세로연구소가 2021년 말 의혹을 제기하면서 경찰 수사로 이어졌다.
같은 해 9월 경찰은 2013년의 성 접대를 포함한 수수 행위에 대한 알선수재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나 ‘공소권 없음’으로 무혐의로 불송치 결정을 했다. 대신 이 전 대표가 의혹을 제기한 가세연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이에 가세연 측은 다시 이 전 대표를 무고 혐의로 고소했고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넘기면서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다.
● 2024년 총선에선 무소속 출마도 불사
올해 2월 이준석 전 대표가 지원한 국민의힘 전당대회 후보들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간담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이기인, 천하람, 허은아, 김용태 후보.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지난달 치러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천아용인’(천하람 허은아 김용태 이기인 후보의 약칭)을 지원했지만 당선자를 만들지 못했다. 무고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가 끝날 때까지 당분간 이 전 대표의 휴지기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신 지난달 10일 ‘이준석의 거부할 수 없는 미래’를 출간하면서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기지개를 펴며 지지세를 다시 모으는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30%까지 추락하는 등 벌써부터 김기현 대표를 간판으로 총선을 치를 수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이 전 대표 측근은 “일단 당을 개혁하는 데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른 험지 출마를 요구받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만약 친윤 지도부가 이 전 대표에게 공천을 주지 않더라도 그는 무소속 출마도 강행할 분위기다. 지난달 8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친윤 진영이) 괴롭혀서 만약 출마 못 하게 하면 홍준표 시장은 징계받으면서도 대선도 나갔다”고 말한 바 있다.
● ‘할배’ 김종인의 마지막 대선 프로젝트는 이준석과 ○○○?
“<거부할 수 없는 미래> 추천사를 받기 위해 김 전 위원장을 찾아갔다. 할배(그는 김 전 위원장을 사석에서 ‘할배’라고 부른다)가 말하길 ‘이 대표, 이제 이렇게 된 이상 대선 준비해. 내가 도와줄게. 살아 있으면….’ 진짜 이제 할배가 (킹 메이커에) 한을 품었구나 싶었다.”
- 취재 메모 중 -
마지막 “살아 있으면…”이라는 말이 이 전 대표에게 여운을 남겼다고 한다. 1940년생인 김 전 위원장은 올해 83세고 1985년생 이 전 대표는 38세다. 나이를 화투 게임의 일종인 ‘섰다’로 따지면 둘 다 최고 패인 ‘38광땡’이다. 4년 뒤에도 운이 계속 따를 것인가.- 취재 메모 중 -
또 그가 “그럼 대선 준비를 위해 누구를 만날까요”라고 했더니 김 전 위원장은 “○○○을 만나보라”고 했다고 한다.
이 전 대표 MBTI는 ‘모험을 즐기는 사업가’형인 ESTP다. 이 유형은 ‘내기를 좋아한다’ ‘삶을 즐기며 산다’ ‘스릴을 좋아한다’는 등 평가가 있다. 이 전 대표 측은 “모험을 즐길 줄 안다. 전당대회에서 1등을 달리고 있는데도 ‘부자 몸조심’을 안 하고 대단히 공격적으로 베팅을 하더라”고 말했다.
그 역시 승부사적 기질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추진한 것도 누군가는 정치적 야심이 컸기 때문에 다음 행보를 노리고 나섰다고 하지만, 시의회를 다수를 차지한 당에 빼앗긴 상태에서 시정을 마음대로 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승부수를 던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것이 경솔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정치를 하면서 그런 큰 것을 대범하게 걸 줄 아는 승부사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한다.”
- 저서 <이준석의 거부할 수 없는 미래> 중 -
하지만 오 시장은 주민투표로 10년 가까이 정치적 암흑기를 거쳤고 도박이 그렇듯이 베팅을 잘못했다간 집안이 거덜날 수도 있다. 다행히 미혼인 그에게 아직 부양가족은 없다.- 저서 <이준석의 거부할 수 없는 미래> 중 -
● 오바마에게서 배워야 할 포용과 관용
이 전 대표는 한국의 오바마를 꿈꾼다. 47세 나이로 ‘흑인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통합과 개혁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 전 대표가 그를 벤치마킹하기 위해선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서 배워야 할 덕목이 있어 보인다. 이 전 대표가 2021년 3월 국민의힘 대구 합동연설회에서 했던 말이다.“2004년 제가 공부하고 있던 보스턴에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존 케리 대선 후보의 선출을 위해 모인 사람 중 바람잡이 연설자로 흑인 상원 의원이 나섰습니다. (중략) 그는 ‘이라크전에 찬성하는 사람도 애국자요,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도 애국자다. 백인의 미국, 흑인의 미국, 라틴계의 미국, 아시아계의 미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오직 미합중국이 있을 뿐이다.’ 이 말에 미국은 전율했습니다. (중략) 오바마가 외친 통합의 시발점은 바로 관대함입니다. 그리고 통합의 마지막 완성은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중략) 여러분은 다른 생각과 공존할 자신감이 있으십니까. 내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고 그 사람도 애국자라는 것을 입 밖으로 내어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 이전에 당 내부에서부터 ‘다른 생각과 공존할 자신감’ ‘통합’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는 자세 등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철부지’네 뭐네 비하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그는 사상 첫 30대 여당 대표 신화를 만든 유례없는 인물이다. 그의 미래가 곧 청년정치의 미래라고 하면 과언일까?지난 <법정모독 13화>가 나가자 하버드대 경제학과 복수전공에 대한 이준석 전 대표의 허위학력 의혹을 제기하는 독자들이 여전히 많았습니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표는 “이미 무혐의로 끝난 사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확하게는 하버드대에선 ‘joint concentration’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한국식으로 복수전공에 가까워 보입니다. 다만 학위를 각각 부여하는 게 아닌 통합전공에 가까워서 이 차이 때문에 오해가 빚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성 접대 의혹에 대한 질문은 왜 하지 않았느냐고 저를 채근하는 댓글도 있었습니다. 물론 했습니다. 최태원 SK 회장이 자신의 사업을 도와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전 대표가 최 회장의 사면을 자신에게 건의하기 위해 접대를 했다는 내용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했습니다. 또 자신이 갔던 유흥업소에 전직 장관과 유력 인사 등도 갔었는데 그러면 다 접대를 받은 것이냐고 경찰 조사에서 되물었다고 말했습니다. 어쨌거나 ‘팩트’는 신의 영역이고 이제 검경 수사는 무고 건만 남아 사법적 판단은 마무리 단계입니다. 정치적 판단과 평가는 국민들이 할 것입니다.
공교롭게 20일 공개될 <법정모독 15화>의 다음 주인공은 앞서 김종인 전 위원장이 이 전 대표에게 만나보라고 했다는 인물입니다. 그의 조언에도 아직 두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가 봐도 결이 다르고, 스타일 차이가 있는 분들입니다. 다음 주인공은 법정모독에는 처음 등장하는 ‘무소속’ 정치인입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