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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는 진보’는 틀렸다…반증해준 ‘재승박덕’ 이준석 [황형준의 법정모독]

입력 | 2023-04-13 14:00:00


‘재승박덕(才勝薄德)’

기성 정치권을 몰아세우며 ‘따박따박’ 할 말을 하는 것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장점이자 매력이다. 하지만 그 자체로 단점이 되기도 한다. 이 전 대표와 같은 정당에 몸담았던 한 유력 정치인은 그에 대해 한마디로 재주는 많지만 인덕이 없다는 의미로 이 같은 평가를 내놓았다고 한다.


● 과도하게 자아가 강한 ‘재승박덕’ 스타일

2016년 11월 당시 새누리당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국회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사퇴를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당시 노원병 당협위원장이었던 이준석 전 대표(가운데). 동아일보DB

이 전 대표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정치권 인사들은 “한마디로 아주 잔머리 굴리는 데 도가 튼 ‘도사’인 데다 하나도 손해는 안 보려 하니 덕이 없다” “정치인들은 기본적으로 자기애가 강하지만 이 전 대표는 에고(ego)가 강해도 너무 강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내공은 없고 입만 살아 있다” “언론과 SNS에 자기 이름이 나오는지 매일 검색하는 데 중독된 ‘관종’” 등의 혹평도 있다.

흔히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말이 있다. 17대 국회에 대거 진출한 당시 열린우리당 386운동권 출신 초선 의원들의 행태 이후부터 생겨난 말이다. 하지만 26세에 정치를 시작하고 보수를 표방한 이 전 대표도 기성 정치인들로부터 같은 평가를 받는다. 싸가지 없음이 진보의 전유물은 아닌 것이다. 기원전 1700년 무렵 수메르 점토판에 “요즘 젊은 놈들은 버릇이 없다”고 써 있듯이 그저 세대 차이에 따른 갈등일 수 있다.

이 전 대표도 도발적인 발언을 하다 보니 구설수에 자주 휘말렸다. 국정농단 사태가 논란이 됐던 2016년 11월엔 당시 이정현 대표 사퇴를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또 안철수계 국민의당과 유승민계 바른정당이 합당해 만든 바른미래당에선 2019년 4월 재·보궐선거 성적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손학규 당시 바른미래당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 전 대표가 비공개 회식 자리에서 안철수 의원을 향해 ‘병×’라는 비속어를 써서 논란이 된 일도 있다. 이 전 대표는 “사석에서 한 말이고 이것이 문제 될 발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사과하지 않았다. 안 의원 측의 문제 제기로 바른미래당 윤리위원회는 이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결정을 내렸다. 결국 이 사건으로 계파 간 갈등이 폭발하면서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탈당한 뒤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했다. 이후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 국민의힘으로 통합됐다.

2021년 국민의힘 당 대표로 선출된 뒤에도 친윤 측과 갈등이 깊어졌다. 친윤 측에선 이 전 대표를 의도적으로 소외하거나 그를 깎아내리는 익명 인터뷰를 하는 등 견제구를 날리며 불화를 일으켰다. 이 전 대표도 ‘윤핵관’이라는 단어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여러 차례 충돌했다. 특히 이 전 대표는 자신이 연루된 성 접대 의혹을 수사하는 경찰의 배후에 윤핵관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도 폈다. 국민의힘 대표와 대선 후보 양측이 대선 앞에서 힘을 모아 일치단결해도 모자랄 판에 서로 이전투구를 벌이며 몇 차례 싸웠다 화해하는 꼴불견의 장면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성 접대 의혹에도 휘말렸다. 2013년 7월 11일과 같은 해 8월 15일에 대전 유성구 소재의 모 호텔에서 김성진 당시 아이카이스트 대표이사의 주선으로 성매매 여성에게 두 차례 성 접대를 받았다는 것이다. 가로세로연구소가 2021년 말 의혹을 제기하면서 경찰 수사로 이어졌다.

지난해 7월 당 윤리위원회가 그에 대해 당원권 6개월 정지 결정을 내리자 그는 불복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홍준표 대구시장은 ”바른미래당 시절 대선배이신 손학규 대표를 밀어내기 위해 그 얼마나 모진 말들을 쏟아냈느냐”며 “좀 더 성숙해져서 돌아와라”라며 업보이자 자업자득이라는 점을 꼬집기도 했다.

같은 해 9월 경찰은 2013년의 성 접대를 포함한 수수 행위에 대한 알선수재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나 ‘공소권 없음’으로 무혐의로 불송치 결정을 했다. 대신 이 전 대표가 의혹을 제기한 가세연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이에 가세연 측은 다시 이 전 대표를 무고 혐의로 고소했고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넘기면서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다.


● 2024년 총선에선 무소속 출마도 불사

올해 2월 이준석 전 대표가 지원한 국민의힘 전당대회 후보들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간담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이기인, 천하람, 허은아, 김용태 후보.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 전 대표는 추가 징계까지 받으면서 총 1년 6개월 당원권이 정지됐다. 그 뒤 한동안 지역을 돌아다니며 잠수를 탔다. 2024년 총선 직전인 1월에서야 당원권이 회복된다.

지난달 치러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천아용인’(천하람 허은아 김용태 이기인 후보의 약칭)을 지원했지만 당선자를 만들지 못했다. 무고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가 끝날 때까지 당분간 이 전 대표의 휴지기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신 지난달 10일 ‘이준석의 거부할 수 없는 미래’를 출간하면서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기지개를 펴며 지지세를 다시 모으는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30%까지 추락하는 등 벌써부터 김기현 대표를 간판으로 총선을 치를 수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이 전 대표 측근은 “일단 당을 개혁하는 데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했다.

‘0선’ 꼬리표가 붙어 있는 이 전 대표에게 내년 총선 출마는 상수다. 그가 2016년부터 2018년 재·보선, 2020년 총선까지 3번 출마해 낙마했던 서울 노원병 지역구 출마가 기본이다. 비례대표 의원은 안 한다는 생각을 과거에도 여러 번 밝혔다.

하지만 다른 험지 출마를 요구받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만약 친윤 지도부가 이 전 대표에게 공천을 주지 않더라도 그는 무소속 출마도 강행할 분위기다. 지난달 8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친윤 진영이) 괴롭혀서 만약 출마 못 하게 하면 홍준표 시장은 징계받으면서도 대선도 나갔다”고 말한 바 있다.


● ‘할배’ 김종인의 마지막 대선 프로젝트는 이준석과 ○○○?

그는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꼽는다. 그는 2011년 한나라당 비대위원 시절 당시 금기처럼 여겨졌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CBS 라디오에 출연해 “국민들이 아직 해소가 안 됐다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날을 세웠다. 그러자 그 뒤 김 전 위원장이 “용기 있네”라며 밥도 사주고 했다고 한다. 그 후 이 전 대표는 김 전 위원장을 10년 넘게 멘토로 삼았다. 지난달 이 전 대표가 사석에서 한 이야기다.
“<거부할 수 없는 미래> 추천사를 받기 위해 김 전 위원장을 찾아갔다. 할배(그는 김 전 위원장을 사석에서 ‘할배’라고 부른다)가 말하길 ‘이 대표, 이제 이렇게 된 이상 대선 준비해. 내가 도와줄게. 살아 있으면….’ 진짜 이제 할배가 (킹 메이커에) 한을 품었구나 싶었다.”
                                                                                                             - 취재 메모 중 -
마지막 “살아 있으면…”이라는 말이 이 전 대표에게 여운을 남겼다고 한다. 1940년생인 김 전 위원장은 올해 83세고 1985년생 이 전 대표는 38세다. 나이를 화투 게임의 일종인 ‘섰다’로 따지면 둘 다 최고 패인 ‘38광땡’이다. 4년 뒤에도 운이 계속 따를 것인가.

또 그가 “그럼 대선 준비를 위해 누구를 만날까요”라고 했더니 김 전 위원장은 “○○○을 만나보라”고 했다고 한다.

이 전 대표 MBTI는 ‘모험을 즐기는 사업가’형인 ESTP다. 이 유형은 ‘내기를 좋아한다’ ‘삶을 즐기며 산다’ ‘스릴을 좋아한다’는 등 평가가 있다. 이 전 대표 측은 “모험을 즐길 줄 안다. 전당대회에서 1등을 달리고 있는데도 ‘부자 몸조심’을 안 하고 대단히 공격적으로 베팅을 하더라”고 말했다.

그 역시 승부사적 기질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추진한 것도 누군가는 정치적 야심이 컸기 때문에 다음 행보를 노리고 나섰다고 하지만, 시의회를 다수를 차지한 당에 빼앗긴 상태에서 시정을 마음대로 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승부수를 던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것이 경솔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정치를 하면서 그런 큰 것을 대범하게 걸 줄 아는 승부사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한다.”
                                                                  - 저서 <이준석의 거부할 수 없는 미래> 중 -
하지만 오 시장은 주민투표로 10년 가까이 정치적 암흑기를 거쳤고 도박이 그렇듯이 베팅을 잘못했다간 집안이 거덜날 수도 있다. 다행히 미혼인 그에게 아직 부양가족은 없다.


● 오바마에게서 배워야 할 포용과 관용
이 전 대표는 한국의 오바마를 꿈꾼다. 47세 나이로 ‘흑인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통합과 개혁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 전 대표가 그를 벤치마킹하기 위해선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서 배워야 할 덕목이 있어 보인다. 이 전 대표가 2021년 3월 국민의힘 대구 합동연설회에서 했던 말이다.
“2004년 제가 공부하고 있던 보스턴에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존 케리 대선 후보의 선출을 위해 모인 사람 중 바람잡이 연설자로 흑인 상원 의원이 나섰습니다. (중략) 그는 ‘이라크전에 찬성하는 사람도 애국자요,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도 애국자다. 백인의 미국, 흑인의 미국, 라틴계의 미국, 아시아계의 미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오직 미합중국이 있을 뿐이다.’ 이 말에 미국은 전율했습니다. (중략) 오바마가 외친 통합의 시발점은 바로 관대함입니다. 그리고 통합의 마지막 완성은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중략) 여러분은 다른 생각과 공존할 자신감이 있으십니까. 내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고 그 사람도 애국자라는 것을 입 밖으로 내어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 이전에 당 내부에서부터 ‘다른 생각과 공존할 자신감’ ‘통합’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는 자세 등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철부지’네 뭐네 비하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그는 사상 첫 30대 여당 대표 신화를 만든 유례없는 인물이다. 그의 미래가 곧 청년정치의 미래라고 하면 과언일까?



지난 <법정모독 13화>가 나가자 하버드대 경제학과 복수전공에 대한 이준석 전 대표의 허위학력 의혹을 제기하는 독자들이 여전히 많았습니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표는 “이미 무혐의로 끝난 사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확하게는 하버드대에선 ‘joint concentration’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한국식으로 복수전공에 가까워 보입니다. 다만 학위를 각각 부여하는 게 아닌 통합전공에 가까워서 이 차이 때문에 오해가 빚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성 접대 의혹에 대한 질문은 왜 하지 않았느냐고 저를 채근하는 댓글도 있었습니다. 물론 했습니다. 최태원 SK 회장이 자신의 사업을 도와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전 대표가 최 회장의 사면을 자신에게 건의하기 위해 접대를 했다는 내용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했습니다. 또 자신이 갔던 유흥업소에 전직 장관과 유력 인사 등도 갔었는데 그러면 다 접대를 받은 것이냐고 경찰 조사에서 되물었다고 말했습니다. 어쨌거나 ‘팩트’는 신의 영역이고 이제 검경 수사는 무고 건만 남아 사법적 판단은 마무리 단계입니다. 정치적 판단과 평가는 국민들이 할 것입니다.

공교롭게 20일 공개될 <법정모독 15화>의 다음 주인공은 앞서 김종인 전 위원장이 이 전 대표에게 만나보라고 했다는 인물입니다. 그의 조언에도 아직 두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가 봐도 결이 다르고, 스타일 차이가 있는 분들입니다. 다음 주인공은 법정모독에는 처음 등장하는 ‘무소속’ 정치인입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