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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혈세 아낄 재정준칙은 뒷전, ‘퍼주기’ 예타 완화는 한마음인 與野

입력 | 2023-04-13 00:00:00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 신동근 위원장이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소위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스1


여야가 어제 국회 소위를 열어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반면 나랏빚과 재정 적자를 적정 수준으로 억제하는 재정준칙 법제화는 또 다음 달 임시국회로 미뤘다. 총선을 1년 앞두고 여야가 나라곳간 사정은 외면한 채 선심성 사업에 필요한 입법 처리에만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어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를 통과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SOC와 연구개발(R&D) 사업의 예타 면제 기준을 ‘총사업비 500억 원·국비 지원 300억 원 이상’에서 ‘총사업비 1000억 원·국비 지원 500억 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업비 1000억 원 미만인 도로·철도·항만 등의 SOC 사업은 정부의 예타를 받지 않고도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예타 면제 기준을 손보는 것은 제도 도입 이후 처음이다.

1999년 도입된 예타는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의 경제성과 정책 효과를 사전에 평가해 선심성 사업 등을 걸러내는 제도다. 다만 지역균형 발전이나 긴급한 경제 대응 등에 필요한 사업은 면제 조항을 둬, 정부와 정치권은 툭하면 예타 면제를 남발해 왔다. 지난 정부에서는 예타 면제 사업 규모가 120조 원,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예타 면제를 결정한 비중이 76%를 넘어서기도 했다.

지금도 정치권의 필요에 따라 예타 면제가 남용되는데 기준 자체가 허물어지면 총선을 앞두고 지역용 퍼주기 SOC 사업이나 공약들이 난립할 게 뻔하다. 수조 원이 투입되는 지방공항 건설·이전 사업마저도 여야가 의기투합해 예타 면제와 예산 지원을 담은 특별법을 밀어붙이는데, 앞으로 경제성이 떨어지는 지역구 숙원 사업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올해 나랏빚이 1분에 1억 원씩 늘고 있고, 4년 만에 ‘세수 펑크’(세수 결손) 위기까지 닥쳤다. 이런 상황에서 불필요한 재정 사업이 남발되면 나라살림은 머잖아 감당하기 힘든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 여야는 재정 건전성을 훼손하는 예타 제도 변경을 멈추고 나라곳간을 지키는 재정준칙 법제화부터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 진흙탕 싸움을 벌이다가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선심성 퍼주기 입법에서만 손발을 맞추니 정치권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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