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에서 정권 견제론 50%” 여론조사 대통령보다 대통령실은 더 오만하다 설명·공감·사과·책임 안지는 4無 정권 ‘검찰공화국’에 ‘검찰당’ 식물대통령 우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당대표 및 최고위원, 중진의원 연석회의가 열렸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따지고 보면 기이한 일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정권 견제론이 나온단 말인가. 내년 4·10총선 때 ‘정부 지원을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36%, ‘정부 견제를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50%라는 갤럽 지난주 여론조사를 보고 나는 혼자 갸우뚱했다.
총선 1년 전 여론조사라고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4년 전에도 똑같은 설문조사가 있었다. 결과는 무섭게 정확했다. 2019년 4월 11일 ‘정부 지원론’이 47%, ‘정부 견제론’이 37%였는데 2020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비례정당까지 합쳐 180석 압승이었다.
국민의힘 중진들은 12일 김기현 대표에게 지난달 당 대표 선출 이후 당 지지율이 떨어졌다며 말조심, 국민정서 조심을 주문했다. 핵심을 벗어난 조언이다. 정권 견제론은 단순히 설화 때문에 나오지 않았다. 1월 정진석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 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 윤 대통령의 성과로 총선을 치를 것”이라고 공언했다. 다수 국민이 정권 견제를 원한다는 것은 윤 대통령의 얼굴과 성과에 불만이 많다는 의미인 거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설명 없고, 공감 없고, 사과 없고, 책임지는 사람 없는 4무(無) 스타일이다. 지지율이 올라갈 일도 되레 깎아먹는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가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일본 요미우리신문 3월 15일자 인터뷰에서 “대통령 되기 전부터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을 통한 제3자 변제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해 왔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방일 전 이렇게 친절하게 우리 국민이나 언론에 설명한 적이 있나 싶어 눈물이 났을 정도다(방일 후 국무회의 모두발언으로 읽은 23분간의 담화문은 설명 아닌 설교였다).
이태원 참사 때도 윤 대통령은 “책임이라는 것은 (책임이)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라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싸고돌았다. 대통령 취임 전엔 대통령 부인의 활동도 없을 것이라더니 제2부속실도, 특별감찰관도 안 두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실은 대통령보다 오만해 보인다. 당 대표 경선 중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께서 나경원 전 의원의 그간 처신을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본인이 잘 알 것”이라고 경고장을 날려 결국 주저앉혔다. 정무수석은 안철수 당 대표 후보를 향해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라고 조폭처럼 협박했다. 유신독재 시절 서슬 퍼렇던 중앙정보부장들도 이토록 공개적으로 당내 경선에 개입하는 행태는 보인 바 없다.
문제는 이런 대통령실에서, 그리고 윤 대통령과 같이 일했던 검찰 출신들을 중심으로 내년 총선 출마설이 나돈다는 사실이다. 육사 출신도, 무능한 운동권 출신도 정권을 운영했는데 똑똑하고 유능하며 윤 대통령 뜻을 빠릿빠릿하게 받들 특수통 검사 출신들은 훨씬 잘하고도 남을 거라는 소리가 거짓말같이 나돌고 있다. 이러다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나는)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윤 대통령의 올 초 한 신문과의 인터뷰가 현실이 될 것만 같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지지율 0%가 돼도 할 일을 하겠다”며 진짜 검찰 공천을 밀어붙일지 모른다. 총선에 이기고 2027년 대선에서 지느니, 차라리 총선 포기하고 정권 재창출을 하는 게 성공한 정권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0년 총선 승리하고 2022년 대선에서 패한 문재인 정권보다는 2000년 총선에선 졌지만 2002년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던 김대중 정권 모델이 백번 낫다는 계산을 할 수도 있다.
김기현 대표가 총선 공천을 하며 윤 대통령과 맞설 리 없다. 그러나 ‘검찰 공화국’ 윤석열 정부에서 ‘검찰당’이 된 국민의힘이 총선을 포기한들, 대선에서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이제라도 윤 대통령이 부인을 대하듯 국민에게 좀 더 친절하게 다가오길, 그리하여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좋은 점수를 받길 바랄 뿐이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