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산불] 산불 발생 10분도 안돼 불바다로 “새로 들인 시설-요트 다 타버려… 관광으로 먹고사는데 생계 어쩌나” 주민들 “따뜻했던 분” 희생자 애도… 尹, 강릉시 특별재난지역 선포
잿더미 된 펜션촌… 주인은 망연자실 12일 강원 강릉시 안현동에서 3층 규모 펜션을 운영하는 신동윤 씨가 불에 타버린 펜션 앞에서 전날 산불 피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오전 강릉시 경포동의 한 펜션 밀집 지역이 화재로 소실된 구역과 가까스로 화마를 피해 간 구역(아래 사진)으로 나뉘어 있다. 강릉=뉴스1·강릉=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왔어요. 그런데 다 타버리고 남은 게 하나도 없네요.”
12일 강원 강릉시 저동에서 만난 전문기 씨(28)는 전날 발생한 대형 산불이 덮쳐 전체가 까맣게 그을린 채 폐허가 된 펜션 내부를 뒤지다 한숨을 내쉬었다.
전 씨는 어머니와 함께 객실 8개 규모의 펜션과 편의점을 운영해 왔다. 특히 젊은층을 공략하기 위해 지난해 전 재산을 털어 객실 내부 인테리어를 정비했고 TV와 냉장고도 새 제품으로 교체했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전 씨는 화마에 펜션과 편의점을 모두 잃었다.
● “성수기 앞두고 날벼락”
대피소인 강릉 아이스아레나 체육관에서 잠을 잔 홍진주 씨(70·여)는 일어나자마자 난곡동에 있는 자신의 민박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민박집 객실 10개는 벽도 문도 대부분 사라진 다음이었다. 바닥에는 수도관이 터져 흘러넘친 물만 흥건했다. 홍 씨는 “남편과 민박집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해 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 막막하다. 화재보험도 안 들어서 당장 먹고살 돈도 없다”며 눈물을 보였다.
특히 상인들 중에는 다음 달 어린이날 연휴부터 여름 휴가철까지 이어질 대목을 맞아 리모델링을 하거나 집기 등을 교체한 경우가 상당수여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주민들 사이에선 경포호와 해변으로 이어지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산불로 초토화되면서 “대표적 관광 자원을 잃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수십 년 동안 되풀이된 동해안 산불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켰던 소나무 숲이 이번엔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는 것이다.
● “음식 나눠 주던 착한 어르신이 떠났다”
주민들 사이에선 이번 산불로 숨진 전모 씨(88)를 애도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전 씨가 운영하던 펜션에서 1년 가까이 장기 투숙했다는 배모 씨(65)는 “고인이 교직 생활을 오래하셨던 걸로 들었는데 인품이 훌륭한 분이었다”며 “반찬을 이웃들에게 나눠 주시던 따뜻한 분이었는데 황망하게 가신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배 씨는 전날 오후 5시경 불길이 잡히자 휴대전화를 챙기러 돌아왔다가 전 씨가 숨진 걸 처음으로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강릉=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강릉=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