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4월이 되니 많이 따뜻해졌다. 기나긴 겨울이 끝나고 완연한 봄이다. 12월에 맹위를 떨치던 한겨울의 추위도 한풀 꺾이는 것을 보면 영원한 것은 없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자연의 법칙은 너무나 정교해서 계절은 끝이 나고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삶 역시 마찬가지이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있어도 시간 앞에서는 장사가 없고, 영원한 고통이란 없다. 시간을 믿고 기다리다 보면 고통스러운 시간도 전환점을 지나고 어느덧 끝나 있음을 알게 된다. 고통을 견딘 인고의 시간만큼이나 세상을 살아가는 내공이 생긴다. 다음에 또 어떤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단단해진 내공으로 우리는 또다시 살아간다. 그렇게 살다 보면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면 세상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는 사실뿐이다.
그렇다. 세상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끝이란 무엇인가. 연애의 끝은 헤어짐 아니면 결혼이다. 헤어짐의 끝은 새로운 만남이고, 결혼의 끝은 사별 아니면 이혼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헤어진 연인은 새로운 만남을 매개해주는 사람이 되고, 평생의 반려자인 배우자는 언젠가는 헤어질 사람으로 다르게 인식된다. 끝은 현재를 되돌아보게 하며 새롭게 보게 해주는 힘이 있다.
가까운 이가 돌아가셨다고 하더라도 그분의 유지를 마음속에 받들며 그분 몫까지 두 배로 열심히 산다면 그분은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 된다. 누군가의 죽음은 그렇게 누군가의 삶이 되고, 우리의 생과 사는 반복되고 이어진다. 세상 모든 일에는 끝이 있지만, 끝의 자락에는 또 다른 시작이 있다. 삶의 끝은 죽음이고 죽음의 끝은 삶이다. 그저 새로운 전환점일 뿐이다.
삶의 재발견이라는 주제로 칼럼을 쓴 지 2년이 되었다. 1년간 쓰기로 하며 시작했던 칼럼이 우여곡절 끝에 1년을 더 쓰기로 했고 2년이 지났다. 이제 칼럼도 끝이 난다. 부족한 글에도 그간 격려해주시고 읽어주셨던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삶의 재발견’ 칼럼은 ‘끝의 재발견’이라는 주제로 끝이 나지만 다른 형태로 독자분들 각자의 삶에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끝은 언제나 늘 새로운 시작이었다.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